내수 부진 장기화에 가파른 성장률 둔화
지난해 1분기 깜짝 성장이후 사실상 멈춰
예상 벗어난 빠른 침체, 올해도 지속될 듯
작년 4분기 0.1%…연간 2.0% 성장 그쳐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다. 소비와 투자가 부진하고 수출도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경제 앞날이 우려된다.
더구나 정부와 한국은행 등이 예상한 성장 경로를 크게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추경 편성과 금리 인하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24년 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실질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2.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는 전분기 대비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모두 한국은행의 지난해 11월 수정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한은은 당시 2024년 4분기 0.5%, 연간 2.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지난해 1분기(1.3%) 전분기 대비 깜짝 성장률을 보여줘 한 때 연간 2.5% 안팎 성장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하지만 3분기와 4분기 연속 0.1%에 그쳐 2분기(-0.2%) 역성장을 고려하면 지난해 상반기 이후 성장세가 사실상 멈춘 셈이다.
성장세 둔화의 원인은 내수 침체가 꼽힌다.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2% 증가했지만 3분기(0.5%)보다 증가세가 둔화했고, 연간 증가율도 1.1%에 그쳐 전년도(1.8%) 수준을 밑돌았다.
설비투자는 연간 1.8% 증가해 전년도(1.1%) 부진을 넘어섰지만, 4분기(1.6%)는 전분기(6.5%) 상승세보다 둔화했다. 건설투자는 연간 -2.7%로 역성장했다. 지난해 2분기(-1.7%) 이후 3분기(-3.6%)와 4분기(-3.2%)까지 연속 후퇴했다.
지난해 수출은 6.9% 증가해 수입(2.4%) 증가세를 웃돌았다. 다만 수출 증가세도 1분기(1.8%) 이후 2분기(1.2%)와 3분기(-0.2%), 4분기(0.3%)로 갈수록 둔화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지출 부문의 연간 성장률 기여도는 수출(1.8%p)이 내수(0.2%p)를 크게 앞섰다.
경기 둔화는 앞으로 더 문제다. 내수부문의 각종 지표가 지난해 상반기 이후 정체 또는 후퇴하는 가운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과 트럼프행정부 출범 등 대외 변수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4분기 속보치를 발표하면서 12월 일부 실적이 포함되지 못했다고 발표해 계엄(12월 3일) 이후 소비 추이 등은 모두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지난해 12월 집계한 소비자심리지수는 전달 대비 12.3포인트나 급락해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 3월(-18.3) 이후 가장 큰폭으로 하락했다. 이번달 소비자심리는 지난달에 비해 3.0포인트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장기 평균선(100)을 밑도는 91.2에 그쳤다. 한은은 또 최근 보고서에서 계엄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실질GDP가 0.2%p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4분기 성장률은 예상치(0.5%)를 0.4%p나 밑돌았다.
한은은 또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추가로 낮춰 잡았다. 지난해 11월 전망에서는 1.9%로 예상했지만, 최근 계엄사태 등의 파장을 고려해 새롭게 내놓은 전망에서는 1.6~1.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마저 트럼프행정부 출범에 따른 관세정책의 변화와 이에 따른 수출 감소세 등의 영향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하방압력의 여지도 충분하다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일부 민간 기관에서는 올해 실질GDP 성장률을 1% 초중반까지 낮추는 흐름도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JP모건(1.3%)은 “수출은 견조하지만 소비심리가 정치와 정책 불확실성으로 급락하는 등 내수 부문이 취약하다”며 “예상보다 부진한 내수 회복이 앞으로도 더딜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경기 부진이 고착화될 흐름을 보이자 통화 및 재정당국의 특단 조치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현행 연 3.00%로 동결했지만 추가적인 인하 필요성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의 추경 편성 요구도 잇따른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15~20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이 빠를 수록 좋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올해도 건설투자의 부진이 이어지며 1분기 성장률도 0.5%보다 낮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