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싸늘한 설 경기, 북적이는 국제공항
올해 설 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설 휴무일수나 상여금의 양극화가 커졌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데 비상계엄 후유증으로 시장 기대가 약화하는 가운데 미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대외 리스크마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전국 5인 이상 60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올해 설 경기상황(1월 기준)이 지난해보다 악화했다고 답한 기업이 60.5%나 됐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70.1%)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았다. 악화됐다고 응답한 기업 중 종업원 300인 미만이 62.0%나 되는데 비해 300인 이상 기업은 48.5%에 그쳤다.
특히 올해 설 상여금을 지급하기로 한 중소기업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지급액도 지난해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정부가 연휴기간을 늘려주기 위해 27일 월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지만 이날 쉬지 않는 중소기업도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10곳 중 6곳이나 됐다.
비상계엄 직격탄, 트럼프 2기 정부 출발 등 한국경제 시계제로
반면에 무안공항 제주항공 대참사와 항공권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24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10일간 인천공항 등 국내 6개 국제공항에서 해외로 떠날 승객이 134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출발 승객이 지난해 설 연휴 때보다 13.8%나 증가해 국내 자영업자들이 울상을 짓고 관광수지 적자가 더 커지게 됐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많은 빚을 진 소상공인들이다. 이들은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해 보증기관이 대신 빚을 갚아준 은행 일반보증 대위변제액이 지난해 2조3997억원으로 전년보다 40.1%나 폭증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대출금 이자만 지급하다가 앞으로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는 시기가 도래하면 이들의 부채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 자명하다.
한국경제는 계엄사태 이후 원달러환율 급등과 고물가,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무척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이를 반영해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제시한 1.9%에서 1.6~1.7%로 낮췄다.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경제심리 위축이 상반기 내내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비상계엄 쇼크는 고용시장에도 직격탄을 가해 지난해 12월 취업자가 전년 동기대비 5만명 넘게 급감했다. 월별 취업자수가 3년 10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2월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고용이 감소하면 가계소득이 줄고 다시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기를 침체시키는 악순환이 전개된다.
정치리스크는 환율을 치솟게 하고 물가를 자극,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계엄선포 이전에도 우리 경제는 성장엔진이 꺼져가고 있었다. 지난해 1~11월 국내 소비는 의류 자동차 가전 식품 등의 소비위축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21년 만에 최악이었다.
기업들은 ‘시계제로’로 인해 투자와 고용을 보류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 과제는 연구개발(R&D)과 신성장 동력 지원 등이다. 그런데도 반도체특별법 등 기업들이 고대하는 법안들은 국회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지난 20일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세계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많은 조치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은 특단의 대책이 아니라 오로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통한 돈 풀기에만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빨리 정치리스크 줄여 국가 성장동력 회복할 대책 마련해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회귀와 인공지능의 급속한 기술적 변화 등 ‘삼각파도’로 인해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모델 작동이 어렵게 됐다면서 “이를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 일하면서 세금을 내고 소비를 늘리는 인구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인구의 약 10%인 500여만명의 해외인력 유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 경제가 살길은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현재의 산업과 사회구조를 시급히 개혁하고 경제체질을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정치리스크로 이러한 개혁 자체가 실종된 채 표류하고 있다.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탄핵정국에서 벗어나 정치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이후 정부와 정치권이 한몸이 돼 국가 성장동력을 회복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