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선관위 군 투입, 내가 지시”
헌재 5차 탄핵 변론서 직접 발언 … ‘정치인 체포’ 놓고 홍장원과 충돌
이진우·여인형, 증언 거부 … 2월 6일 곽종근 김현태 박춘섭 증인 신문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군 투입을 자신이 직접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인 체포 지시와 관련해서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발언에 대해 윤 대통령은 간첩을 잡아들이라고 얘기한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헌법재판소는 4일 오후 2시부터 윤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직접 출석해 증인들의 증언이 끝난 뒤 발언 기회를 얻어 적극 해명에 나섰다. 국회측이 신청한 증인으로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참석해 증언했다.
◆윤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강조 = 윤 대통령은 이날 선관위 군 투입을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선관위에 (군을) 보내라고 한 것은 제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얘기한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엉터리 투표지들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라고 발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9일 또는 30일 김 전 장관에게 계엄 선포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선관위 군 투입을 직접 지시했다는 건 처음 거론된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0월 국가정보원에서 3차례에 걸쳐 선관위 전산시스템 점검 결과를 보고받았는데 정말 많이 부실하고 엉터리였다”며 “이건 포고령에 따른 수사가 아니라 행정·사법상 관장하므로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계엄군이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지시는 내란죄에 해당하는 폭동에 이르지 않았고, 부정선거 확인 차원에서 계엄군을 선관위에 보냈으며 이는 위법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은 “합동수사본부나 계엄사령부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에 따라 군 철수를 지시”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러차례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했다.
◆윤측 “간첩 싹 다 잡아들여라” 주장 =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정치인 체포 지시’와 관련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정면 반박했다. 홍 전 차장은 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이 전화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방첩사를 도와 지원해’라고 말했는지 묻는 국회측 대리인의 질문에 “그렇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후 여 전 사령관이 통화에서 ‘국회는 경찰과 협조해 봉쇄하고 있다. 체포조가 나가 있는데 소재 파악이 안 된다. 명단 불러 드리겠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답했다.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의 ‘방첩사 지원’ 지시가 체포조를 도와주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측 대리인은 대통령이 홍 전 차장에게 ‘방첩사가 육사 후배이니 방첩사를 도와주고 간첩을 싹 다 잡아들여라’고 말한 것이라며 “미묘하지만 큰 차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홍 전 차장은 “제가 기억하는 부분과 좀 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이후 국회측 대리인이 “윤 대통령, 여 전 사령관과 통화 당시 간첩 얘기가 나온 적 있는가”라고 묻자 “나온 적 없다”며 못박았다.
윤 대통령은 홍 전 차장의 증인신문이 끝난 뒤 “(홍 전 차장에게 방첩사가) 간첩 수사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라고 계엄 사무와 관계없는 말을 한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수명재판관인 정형식 재판관은 홍 전 차장이 메모에 ‘검거 요청’이라고 적은 이유를 집중적으로 질의하며 홍 전 차장 진술에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다. 홍 전 차장이 “위치 추적이 대상자를 검거하기 위해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이해했다”고 답하자 정 재판관은 “그러면 검거 지원 요청이라고 적어야 했던 게 아니냐. 아무리 대통령 전화를 받았다지만 정보를 민감하게 보증하는 방첩사령관이 구체적으로 체포 명단을 얘기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 재판관은 또 홍 전 차장에게 “방첩사령관의 이야기를 듣기도 싫었다고 하면서도 내용을 자세히 메모해 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따져 묻기도 했다. 홍 전 차장은 “생각나는 대로 간단히 메모한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이지 않다고 지적받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진우, 명단 존재는 인정 = 홍 전 차장에 앞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여 전 사령관은 국회 진입과 정치인 체포 관련된 증언을 거부했다. 자신들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 전 사령관은 증인신문에서 체포 명단의 출처나 내용은 함구했다. 여 전 사령관은 “김 전 국방부 장관에게 명단을 받은 적 있는가”, “명단을 수사단에 제공하며 체포하라고 말한 적 없는가”라는 국회측 대리인의 질문에 모두 “형사재판에서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면서 “굉장히 다른 진술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명단의 존재는 인정했다. 계엄 당시 조지호 경찰청장과의 통화에 대한 질문에 “특정 명단에 대해 위치를 알 방법이 없으니 위치 파악을 요청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검찰 공소장에는 여 전 사령관이 방첩사 수사단장에게 “김 전 장관으로부터 받은 명단인데 14명을 신속하게 체포하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이 전 사령관도 국회측이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적 있느냐”고 묻자 이 전 사령관은 아예 침묵을 지켰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거부한다고 얘기는 하라”고 하자 그제야 “답변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같은 국회측의 질의 내용은 이 전 사령관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진술한 내용인데도 답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 전 사령관의 증인신문이 끝나고 “이번 사건을 보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를 했니, 지시를 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헌재는 6일 오전 10시 윤 대통령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을 열고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3명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한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