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경제주체들 초초하게 하는 정치불확실성
외국자본 유치가 거의 확정됐던 반도체 관련 스타트업체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계엄사태 후 2건 모두 1년 유보됐다”고 탄식했다. “한국 상황을 1년 정도 더 지켜봐야 투자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전했다. 그는 “1건은 급한대로 사모펀드 투자를 받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진행중이나, 다른 1건은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이 업체만 그런 게 아니다. “외국인 투자와 거래가 거의 올스톱됐다”는 비명이 업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한국 상황을 1년 정도 더 지켜봐야겠다”는 외국투자자들의 시선이다.
앞의 CFO는 “탄핵이 하루 빨리 결론 나고 조기대선을 치르더라도 정치 불확실성이 빨리 걷혀야 한다”면서도 “진영논리가 극으로 치달아 헌번재판소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높아져 차기정권이 출범하더라도 불확실성이 걷힐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외국투자자들도 ‘내전적 상황의 장기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외국 투자자들 ‘내전적 상황의 장기화 가능성' 우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치 석학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윤석열이 사라진다고 공존의 정치나 평화의 시민사회가 오는 건 아니다”라며 “지금 같아선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나 유사내전 같은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방송에 나와 “윈스턴 처칠이 이런 얘기를 했다.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체제다. 그 이전까지 있었던 모든 체제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얘기는 이게 아주 불안정하고 선거 과정도 그렇고, 선거 결과도 그렇고, 법원의 판단도 그렇고, 그렇지만 ‘폭력을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이전에 있던 체제보다는 그래도 나은 체제’라는 걸 역설적으로 익살스럽게 얘기한 것”이라며 윈스턴 처칠을 소환했다.
이어 “그러면 선거라든가 법원이, 판사가, 재판관이 완벽하게 판단하냐? 그렇지 않다”면서 “‘그러나 그거는 승복하자’, 이렇게 우리가 약속하고 합의한 거다. 왜? 그게 무너지면 거리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니까. 그런데 저번에 서부지법 난입 사건도 있었는데 이런 추세로 계속 가면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최근 헌재에 대한 신뢰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고, 특히 지난주에 NBS 발표를 보면 헌재의 탄핵 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가 20~30대 젊은층에서 더 높다”고 우려했다.
강성 보수인 홍준표 대구시장조차 페이스북에 “나는 탄핵이 기각되어 윤통의 복귀를 간절히 바란다”면서도 “나라가 둘로 쫙 갈라져 탄핵이 인용 되어도 걱정이고 기각 되어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헌재조차도 좌우로 갈라진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좌우진영에서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대한민국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홍 시장은 지난 주말 대구에서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탄핵반대집회에 부인만 ‘대타’로 내보냈다가, “경북도지사는 나왔다”며 윤 대통령 강성지지층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강남 압구정로는 코로나 팬데믹 때도 잘 나가던 대표적 유흥가다. 그러나 탄핵후 상황이 달라졌다. 연말연초 시즌도 휑 했고, 설 연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유흥업소 대표는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아예 밤에는 길거리에 오가는 이를 찾기 힘들 정도로 유령도시처럼 썰렁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보니 강남 일대의 상가 임대료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건물주들은 지난 수년간 극심한 내수불황에도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값이 내려간다”는 이유로, 차라리 공실로 남겨둘지언정 임대료 인하에 강력 저항해 왔다. 하지만 더 견딜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한듯 줄줄이 임대료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기업들마저 '각자도생' 하자며 미국행 택할 판
지금 돌아가는 정치상황은 경제주체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반도체업계 핵심민원인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는 민주당내 혼선으로 연일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다. 1심에 이은 2심의 이재용 회장 무죄판결 직후 공소를 제기했던 이복현 금감원장의 “삼성을 응원하겠다”에 안도하던 삼성전자는 검찰의 대법원 상고에 아연실색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이 와중에 전 세계 대기업들을 향해 “미국으로 오라”며 ‘당근과 채찍’ 병행전술을 구사중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1조달러 투자’로 화답했다. “죽은 권력이나 대행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트럼프 원칙에 따라 우리는 애당초 협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러다가 국내 기업들이 “각자도생하자”며 미국행을 택하지 않을까 우려될 뿐이다.
박태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