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건강이 보험사 경쟁력 3
경쟁력 없는 헬스케어앱, 만보기 전락 위기
의료마이데이터 개방 답보상태
시민단체 “건보정보 민간에 안돼”
국내 보험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헬스케어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정부의 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 개방이 지연될 전망이다. 보험업계가 앞다퉈 투자한 헬스케어앱이 만보기로 전락할 위기다.
◆2025년 의료 3대 과제 시행 = 정부는 올 3월 개인정보 전송요구권(마이데이터) 제도 시행을 앞두고 의료·통신·자율 분야를 선정한 상태다. 의료분야는 만성질환 및 중증질환 예방, 해외체류 국민을 위한 의료지원, 약물 비서 서비스 등 3개 과제가 올해 추진될 예정이다. 정부는 신생기업의 비즈니스 창출과 국민 편익 증진을 위해 마이데이터 활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정부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에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개방 확대를 명시했다.
의료마이데이터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업종 중 보험사가 있다.
각종 데이터 활용이 활발한 곳은 영국이다. 영국은 2009년 데이터 거래소 디지미(digi.me)를 출범시켰다. 영국 NHS(국가보건서비스)를 비롯해 미국 네덜란드 등의 300개 이상의 병원 진료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일본은 2018년 6월 차세대의료기반법을 제정해 민감정보로 분류되는 의료데이터도 익명가공정보의 형태로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당사자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익명정보 형태로 의료데이터 거래가 가능하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개인의 질병 이력 등 민감한 내용들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정보의 민간 제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8월 500개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 등이 모인 ‘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개방 저지 공동행동’이 출범했다. 이들은 건보 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넘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개별 동의 없이 민간보험사에 제공하는 것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2023년 말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 3997만명 정보를 이미 개별 보험사가 축적한 상황”이라며 “건강보험 정보까지 추가 되면 민간보험사는 전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개인정보를 민간보험사가 무분별하게 활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료민영화의 사전 정지작업으로 의심하고 있다. 애초 순차적으로 관련 정보가 민간에 개방되는 것이 검토됐지만 현재는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보험 유관기관 관계자는 “민감한 정책이라 정부 핵심의 결단,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면서 “현재 정국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논의, 의견 수렴이 어려운 터라 한동안 제자리 걸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양극화 우려 = 보험업계를 둘러싸고 개인정보 논란이 발생한 배경은 초고령화다. 보험사는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적립해 불려 나간다. 적립금은 사고당한 가입자에게 보험금으로 지급하거나, 만기 해약환급금 등으로 내준다. 하지만 출산율이 줄고 고령자가 늘면서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고, 보험금을 타갈 사람만 늘어난다.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와 같은 문제다. 다음 세대의 부담이 더 커지는데다가 종전 가입자 혜택이 늘지 않는 것은 공적보험과 민간보험 모두 동일하다. 기존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지켜나가기도 벅찬 상황, 위기다.
가입자들의 질병과 사고에 적절한 보험금이 지급되고, 신규 가입자들에게 제대로 보험료를 받기 위해서는 보험사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답은 데이터에 있다.
공공이 가지고 있는 의료데이타 접근이 어려워지자 보험사들은 헬스케어앱의 고도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고객들에게 건강관리를 돕고, 고객 의료 데이터를 모아 나갔다. 매년 건강검진을 하는 보험가입자와 그렇지 않은 보험가입자간 건강 상태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건강관리를 잘하는 가입자에게는 혜택을 늘리고, 그렇지 않은 가입자에게는 건강관리를 독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보험사간 데이터 양극화가 시작됐다”며 “질 좋은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은 헬스케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테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만보기앱(걷기앱)만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두 보험사는 2014년부터 빅데이터에 관심을 갖고 투자했지만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회사들이 있다”며 “보험사가 헬스케어앱으로 고객 건강관리를 돕는다면 손해율을 낮추고, 양질의 건강정보로 질좋은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