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고실업에 민생고는 악화되는데
조기대선 주도권 경쟁에 멀어지는 ‘타협·합의’
국민의힘, 민주당 수용 어려운 전제조건 제시
‘8년 전과 다른 대내외 환경’에 위기감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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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비쟁점 법안인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해상풍력 발전 특별법 등 에너지 3법의 경우엔 이달 중 처리될 가능성이 높지만 반도체 특별법, 연금개혁 등은 진척이 어려울 전망이다. 여당은 민주당에 ‘52시간 예외 확대’ 등 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연금개혁의 경우 ‘모수+구조 동시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추경 편성에 대해서도 민주당이 깎았던 4조원 원상복구와 사과부터 요구했다. 민주당이 받기 어려운 요구들만 쏟아내며 주도권을 야당에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합의’보다는 ‘정쟁’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표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전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해 “생산 증가세가 완만한 수준에 머무른 가운데, 대외 여건 악화로 경기 하방 위험이 높아지는 모습”이라며 “소비와 건설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으며 그동안 높았던 수출 증가세도 반도체를 제외한 부문을 중심으로 점차 둔화되고 있다. 가계와 기업의 심리지표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국 불안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경기 하방 위험이 증대되고 있다”며 “미국을 중심으로 무역 분쟁이 격화됨에 따라 통상 환경 악화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정치권이 언급해온 ‘민생고’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고금리와 고환율은 가계부채 부담 확대와 고물가에 따른 가계심리 위축, 소비 축소로 전이됐다. 건설 침체로 서민 일자리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소매판매액지수 감소폭(2.2%)은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가장 컸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여야는 이미 주도권 경쟁에 들어갔고 ‘합의’나 ‘통합’보다는 ‘발목 잡기’나 지지층만을 바라본 ‘원칙 고수’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불확실성을 더욱 확산시키고 주요한 국가 전략을 외면하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최 권한대행의 경우 합의안을 제시하거나 중재에 나서기보다는 여당에 끌려다니면서 정쟁을 확산시키는 쪽으로 의사결정에 나서면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내외 경제여건도 나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엔 우리나라 경제가 3% 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잠재성장률을 웃돌았지만 올해만 해도 1%대로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전망기관이 많다. 그만큼 위기 수준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미국발 관세 폭탄이 우리나라로 옮겨붙었고 중국발 AI 경쟁력 위기 논란은 우리나라의 미래성장 능력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년 전인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때와는 분명히 달라진 환경”이라며 “탄핵심판 이후의 정국이 어떻게 정리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알고리즘에 의해 극단적 지지층들의 여론이 강화되고 있고 이들의 행동이 탄핵 정국 이후에도 조정될지 알 수 없는 데다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든 여야에 대한 지지율이나 대선 후보들에 대한 지지도 등을 볼 때도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은 더욱 불확실성을 높이게 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권에서 합의보다는 경쟁 등 주도권 다툼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