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회계 위험 기업보다 훨씬 커, 더 엄격한 회계감사 필요”
서울시 민간위탁 사업 ‘간이 검사’로 변경
국민 혈세 집행에 대한 감시망 약화 우려
최운열 “예산에 대한 철저히 검증·감사해야”
“비영리법인과 공공부문의 회계정보 작성은 기업 보다 이해관계 구조가 복잡해서 리스크가 훨씬 큽니다. 더 엄격하고 강화된 회계감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서울시의회가 민간위탁사업비 회계감사를 ‘간이 검사’로 변경하면서 사업비 부당집행을 차단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비영리법인과 공공부문의 감사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12일 한국공인회계사회 출입기자 회계현안 세미나에서 ‘비영리법인과 공공부문의 회계투명성’을 주제로 발표한 김 교수는 “자본시장의 회계투명성은 주식시장과 투자자 등 이해관계에 의해 계속 발전하는데, 공공부문의 경우 회계투명성이 높아지면 납세자인 국민 전체에 도움이 되지만 (회계투명성을 위해) 돈을 많이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도 굳이 (회계정보를) 다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러한 문제가 그동안 묻혀 있다가 이번 이슈(서울시 민간위탁사업비)로 인해 우리나라 비영리법인과 공공부문의 회계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가 민간업체에 업무를 맡기고 사업비를 지급하면, 집행결과를 납세자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지자체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아는 업체에 일을 맡기고 집행결과가 좋길 바라는 마음이 있고 단체장 선거도 4년 마다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기업에서는 주주와 경영진의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지만 외부감사를 통해 대리인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경영자는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다른 주주(투자자)들을 대신하고 있는 대리인지만, 주주와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고 재무성과를 좋게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투명하고 독립적인 회계감사가 필요한 이유다.
공공부문은 대리인 문제가 두 번 발생하기 때문에 김 교수 설명처럼 기업보다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다. 지자체와 납세자간 대리인 문제, 지자체와 수탁기관 간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세금 집행에 따른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에서 납세자인 국민 입장에서 세금의 투명한 집행을 확인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회계감사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시의회는 지난 2022년 민간위탁사업비 결산서에 대한 회계감사를 검사로 변경하고 세무사도 검사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종전의 사업비 정산감사는 자금의 목적 외 사용, 허위거래, 증빙위조, 가격 부풀리기, 가족 간 거래, 허위 인력 등 사업비 부정사용액을 적출하고 환수하기 위해 진행됐다. 하지만 변경된 간이 검사는 계산의 잘못과 증빙의 구비 여부, 장부와 증빙이 맞는지 맞춰보는 대사 등의 업무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회계를 아는 것과 감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며 “회계사 시험 합격자들도 2년간 실무수습을 거치지 않으면 회계감사를 할 수 없도록 돼 있고, 아무리 형법 전문가라도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수사를 맡길 수 없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역량”이라고 말했다.
2024년 기준 서울시가 민간에 위탁한 사업규모는 345개, 사업비 규모는 약 9424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회계감사에 지출한 비용은 약 9억원에 불과하다. 다른 지자체들도 현재 회계감사로 규정된 조례를 간이 검사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김 교수는 “민간위탁사업 사업비 집행을 감시하는 업무를 회계사들에게 맡길지, 세무사에게 맡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진짜 문제는 책무성과 시스템이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자체에 감사부문을 만들어 전문가를 직접 채용해 감사를 할 수도 있겠지만 비용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들 수밖에 없다”며 “마치 작은 감사원을 여러 개 만드는 것인데, 회계 투명성을 위해서는 회계사에게 업무를 맡기는 게 가성비가 더 좋다”고 말했다.
이날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저희는 직역 간의 업무 다툼 이런 데에 추호도 관심이 없다”며 “정말로 법의 정신에 따라서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그런 부분에 제대로 예산이 집행됐는지 이걸 철저하게 검증하고 감사하는 것이 필요한 부분이라서 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비영리 통합 플랫폼을 개설해 비영리 단체와 공공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회계 교육과 컨설팅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비영리부문의 회계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도 확대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