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유해물질에 청소년 노출”

2025-02-14 13:00:15 게재

‘합성니코틴 규제’ 담배사업법, 또 국회 발목

일부 국회의원, 판매업자 생존권 보호 주장

“판매업자 보호가 이 순간에도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있을 수많은 청소년 보호보다 앞선다는 의원들을 이해할 수 없다. 담배사업법 테두리에서 당당하게 판매하고 싶다는 다수 판매상들의 목소리에는 왜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도 답해야 한다.”

액상형 전자담배 대부분을 차지하는 합성니코틴을 담배사업법상 ‘담배’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이 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것도 입법과정의 첫 관문인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를 지난해 11월에 이어 연거푸 통과하지 못하자 청소년·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는 지난 10일 회의를 열고 담배의 정의를 합성니코틴까지 확대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엇갈리면서 추후 재논의하기로 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가 진열돼있다. 합성니코틴 액상담배는 세금이나 부담금 부과 대상도 아니며, 청소년에게 판매해도 처벌 규정은 없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사실상 담배 대용품 =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 등이 발의한 10여건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은 담배의 원료 범위를 ‘연초의 잎’에서 ‘연초 및 니코틴’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즉, 합성니코틴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전자담배도 ‘법률상 담배’로 확대하는 것이다.

국내서 유통되는 전자담배는 액상형과 궐련형으로 나뉜다. 이 중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 용액과 희석제(PG·VG 등), 첨가물 등이 섞인 액상을 기화시켜 흡입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합성·유사 니코틴 등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 등은 현행법상 담배에 포함되지 않아 각종 규제와 과세 대상에서 빠져 있다. 담배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이나 무인담배자판기에서도 판매할 수 있고, 청소년에게 팔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문제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기존 담배와 같이 중독성이 있어 사실상 담배 대용품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결국 진입 장벽이 낮은 액상형 전자담배가 청소년 흡연율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3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 및 청소년건강행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청소년(중1~고3)의 전자담배 흡연율은 2018년 2.7%에서 2023년 3.1%로 증가했다.

지난 7월 내놓은 ‘청소년 건강 패널 추적조사 결과’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로 처음 흡연을 시작한 학생의 60% 이상이 현재는 일반담배를 흡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시민단체들은 합성니코틴 규제를 주장해왔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국회 논의에 앞서 청소년지킴실천연대와 서울YMCA, 전문기관인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담배사업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에 참여한 2만5596명 명단과 함께 성명서를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정부 규제 입장에 기대감 커져 = 지난해 담배사업법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가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하면서 개정안 통과에 대한 청소년·시민단체 등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컸다.

합성니코틴 규제에 거리를 두던 기재부 변화는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이 높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보건복지부 연구용역 결과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용역에서는 합성니코틴 원액에 유해물질(발암성·생식독성 등)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해물질 69종의 잔류량을 분석한 결과 천연니코틴 원액에서는 45개 항목에서 1만2509㎎/L가 검출됐는데 합성니코틴 원액에서는 41개 항목에서 2만3902㎎/L가 나왔다. 단순히 따져보면 합성니코틴이 천연니코틴보다 검출된 유해물질 총량이 많았다.

알칼로이드는 합성니코틴 원액에서 잔류량이 더 많았다.

또 담배특이니트로스아민(TSNAs)은 합성니코틴에서도 검출됐고 이 가운데 특히 발암성 NNN과 NNK 전구체는 높은 농도로 존재했다.

합성니코틴 원액에서 많은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것은 니코틴 합성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반응물질과 유기용매를 사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구보고서는 합성니코틴 원액에 다수 유해물질이 있다는 점을 들어 “연초니코틴과 동일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합성니코틴이) ‘순수’ 물질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외국처럼 합성니코틴과 연초니코틴을 구별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일부 의원, 정부 용역까지 의심 = 하지만 담배사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일부 의원들이 이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당시 한 야당 의원이 “담배업계 내에서 합성니코틴 규제에 대한 이견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공청회 등 추가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의원은 대부분 소상공인인 합성니코틴 담배 판매업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냈다.

논란 끝에 소위원회는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담배사업법 개정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하지만 공청회 이후 열린 지난 10일 회의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합성니코틴이 유해하다는 정부 용역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액상담배 업자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사실상 법안의 상임위 상정을 반대했다.

논란 끝에 경제재정소위원회는 개정안과 관련해 소매점 거리 제한, 가격 상승 폭, 업자 피해 등에 관한 기획재정부의 의견을 확인한 뒤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소위원회가 일정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논의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장기 공전 의도 의심 =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청소년시민단체와 담배업계를 중심으로 “관련 단체와 업자 생존권이 국민 건강보다 먼저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이들은 의견수렴을 이유로 개정안을 장기간 공전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합성니코틴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일부 국회의원의 반대와 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장기간 계류됐다 임기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일이 아니다”며 “개정안이 표류하는 사이 지금도 10대 청소년들 폐에는 계속해서 화학물질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해성이 확인된 지금은 규제를 하느냐 마느냐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면서 “지금 국회는 합성니코틴 규제 이후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업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화학물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담배업계 관계자는 “합성니코틴 규제를 반대하는 것은 원액을 수입하는 업자들 뿐”이라며 “기존 합성니코틴 납품이 끊긴다고 세금을 내고 영업을 하겠다는 소상공인의 생계가 위협받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합성니코틴을 둘러싼 사회적 부작용이 워낙 크기 때문에 시장을 자정하지 않으면 시장자체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적 추세와도 상반 =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과 일본, 콜롬비아를 제외한 35개국에서 합성니코틴 액상 전자담배를 담배에 준해 규제한다.

미국의 경우 2022년 연방법(The 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의 담배 정의에 합성니코틴도 포함됨에 따라 식품의약국(FDA)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또 미네소타 등 일부 주는 전자담배에 대해 소비세를 부과하고 있다.

영국은 2016년부터 니코틴이 포함된 제품을 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해 2026년 10월부터 소비세를 과세할 예정이다. 특히 프랑스 상원은 13일(현지시간)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 금지 법안을 가결했다. 이 법안은 정부 공포 절차만 거치면 조만간 시행될 예정이다.

청소년을 비롯해 청년층의 건강을 보호하고 오염도가 높은 폐기물의 무책임한 배출을 종식하는 게 법안의 목적이다. 프랑스에 앞서 벨기에는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올해 1월1일부터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