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긴축·경제악화에 자치구 사업 축소·중단
국고보조금, 매칭사업에 대부분 투입
고령화로 노인복지 예산 급격히 증가
서울 자치구들이 정부의 긴축재정과 경제상황 악화로 줄줄이 사업을 취소하고 있다. 조기 추경으로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 마저도 정치권 다툼 때문에 전망이 밝지 않다.
18일 내일신문 취재 결과 자치구들은 올해 예정했던 사업을 대거 축소했다. 부족한 재정여건 때문에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ㄱ 자치구는 구청장 공약이자 역점사업인 ‘청소년 이색레포츠 체험시설’ 건립 관련 예산을 올해 한푼도 배정하지 못했다. 당초 이 시설은 올해 10월 준공 예정으로 후반기 작업을 위해 147억원이 필요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연기가 불가피하다.
어린이공원 조성, 도서관 리모델링 등 주민 편의시설도 예산 편성액이 ‘0원’이다. 부족한 살림을 쥐어짜다보니 주민 삶 개선에 쓰일 예산이 후순위로 밀렸다.
어린이 물놀이터는 ㄴ구 대표 상품이다. 기존 놀이터를 개량해 물놀이장으로 만든 시설로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업이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ㄴ구는 구민체육대회도 중단하게 생겼다. 격년으로 실시했고 주민 단합에 큰 역할을 한 행사이지만 필요 예산 1억9800만원을 확보하지 못했다.

◆구민체육대회도 중단할 판 = 서울 자치구들은 타 지자체에 비해 재정 여건이 양호하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교부금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숨은 압박 요인이 있다. 바로 매칭사업이다. 사업 실행 주체는 정부이지만 돈은 서울시와 자치구가 나눠서 부담한다.
기초연금이 대표적이다. 한 자치구의 경우 국고보조금 총액 4500억원 가운데 기초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500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2000억원을 부담하지만 자치구가 내는 돈도 230억원이 넘는다. 이 자치구 관계자는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해당 분야에 투입할 예산이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요인은 서울시 보조금 축소다. 자치구 재정은 서울시 교부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평균 5%씩 늘어나고 있는 매칭사업 예산의 자치구 분담비율도 골칫거리다. 사업 시작 당시엔 시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예산 전액을 시가 부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8대 2, 7대 3으로 자치구 부담을 늘리다가 최종적으론 5대 5까지 비율이 조정된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매칭사업 때문에 허리가 휘어진다”면서 “기존에 하던 사업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예산을 매칭(연계 편성)해야 하지만 이로 인해 자치구 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할 말은 있다. 시가 자치구에 보내는 교부금의 재원은 보통세다. 하지만 경기 악화로 세금 자체가 덜 걷히다보니 세수가 부족해졌다. 시 또한 정부 사업에 대한 매칭 부담이 증가하면서 매년 해당 분야 예산이 약 1조원씩 늘어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기후동행카드, 미리내집 등 시민 호응이 크고 수요가 많은 사업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증액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치구 관계자는 “늘어나는 복지 예산, 장기화된 불황 등 자치구 재정상황이 당분간 나아질 전망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수입은 늘이고 지출을 줄이는 방향의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자치구 관계자는 “세출 구조조정과 함께 서울시가 책정하는 교부금 산정비율을 현행 22.6%에서 24%로 늘리는 등 세입 증대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