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우크라전 종식 고위협상팀 구성”

2025-02-19 13:00:07 게재

대러제재 완화·미러 관계 정상화도 논의 … ‘패싱’된 우크라·유럽 강력 반발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디리야 궁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과 회담 중 악수를 나누고 있다. UPI=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고위급 협의체를 구성하고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대러시아 제재 해제와 양국 관계 정상화도 노력키로 했다.

회담에서 배제된 ‘당사국’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반발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반발에 대해 실망했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마도 이번 달 전에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 대표단은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우크라전 종전 방안을 놓고 첫 협상을 했다.

로이터통신과 CNN,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양국은 이날 우크라이나가 빠진 가운데 장관급 협상을 열어 4시간 30분간 대화했다. 미국 측에서는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독 특사 등이 참석했다.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회담에서 루비오 장관과 라브로프 장관은 양국이 외교공관 운영을 정상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협상팀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미 국무부는 밝혔다.

루비오 장관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양측이 종전 합의를 위한 협력 뿐 아니라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지리적·경제적 측면에서 모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루비오 장관이 향후 양국이 진행할 3단계 계획을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우선, 모스크바와 워싱턴의 대사관 운영 제한을 해제하는 방안을 협상하고, 둘째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조건과 기준을 협의하며, 마지막으로 양국이 지정학적·경제적 협력을 포함한 새로운 파트너십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라브로프 장관도 양국의 상대국 주재 대사가 신속히 임명될 것이라며 “우리는 단순히 서로의 말을 듣기만 한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했다”고 말했다. “미국측이 우리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믿을 이유가 있다”고 한 라브로프 장관은 “매우 유익한 회담이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현 상황의 주요인 중 하나라고 분명히 말했다”며 미국이 러시아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완화 문제도 거론된 것으로 보인다.

루비오 장관은 “모든 당사국이 ‘양보’하는 것이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유럽연합(EU)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도 회의와 관련해 “호혜적인 경제 협력 발전을 막는 인위적 장벽을 제거하는 것에 대한 강한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양국이 이처럼 고위급 채널을 통해 밀착한 것은 지난 1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를 즉각 시작하자는 데 합의한 지 불과 6일 만에 이뤄진 것이다. CNN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시작”이라고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주요 당사국을 패싱한 미·러 종전 협상에 강하게 반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19일로 예정된 자신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돌연 연기했다. 그는 “협상이 주요 당사자의 뒷전에서 이뤄져서는 안된다. 어떤 결정을 우크라이나에 강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회견에선 “유럽은 우리 세계의 운명과 관련해 필요한 안전보장 발전과 대화에 미국과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불만도 드러냈다.

EU는 미국이 러시아와 회담 후 ‘양보’를 언급하며 EU의 제재를 지목한 것에 발끈했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를 겨냥할 수 있는 추가 조처를 준비 중”이라며 16차 제재를 예고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강력한 카드를 내주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제재 완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며 “수십년 만에 유럽에서 가장 파괴적인 분쟁을 다루는 워싱턴의 접근방식이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의미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신속한 평화 정착을 강행하려는 결심으로 동맹국을 우회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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