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지사발 ‘지방분권개헌’ 진정성 있나
탄핵국면 전환, 조기대선용 의심
풀뿌리단체 “지방분권개헌 적기”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향하면서 조기대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잠룡으로 분류되는 시·도지사들이 연일 ‘지방분권 개헌’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외쳐온 풀뿌리·시민단체들은 ‘탄핵국면 전환용, 조기대선용’으로 의심하면서도 개헌 적기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대선이 현실화되면 개헌론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일 지방분권운동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최근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다. 유정복(인천시장) 협의회장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집권적 구조에서 벗어나 지방이 주도하는 시대를 열기 위해 지방분권형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방정부가 행정 단위를 넘어 실질적인 정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 지방정부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회장은 19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다음달 7일 국회에서 지방분권 개헌안에 대한 대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13일 국회 개헌 토론회에서 “1987년 헌법 체제를 극복할 핵심은 지방분권”이라며 “입법·행정뿐 아니라 세입·세출 권한까지 이양하는 과감한 지방분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태흠 충남지사 역시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권력구조를 개편하되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지방분권을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기지사 역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함께 지방분권을 포함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과 김태흠·김동연 지사는 조기대선 출마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친 상태다.
때문에 시·도지사발 지방분권 개헌론이 조기대선용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불과 1년 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여권 시·도지사들이 ‘메가시티’ 띄우기에 나섰던 것과 비교된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4.10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과 충청, 영남권 단체장들은 ‘메가시티’를 만들자며 행정체제 개편 띄우기에 앞장섰다. 오 시장과 김포시장 등 여당 경기도 기초단체장들은 ‘서울 편입(메가서울)’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야당과 자치분권단체들은 ‘김포 서울편입’ 주장에 대해 지방자치와 균형발전에 역행한다며 반발했다. 당시 유정복 인천시장도 “김포시 서울 편입은 총선용 정치쇼”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노민호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는 “김포 서울편입 노래소리가 아직 귀에 맴도는데 갑자기 지방분권 개헌을 하겠다면 누가 믿겠냐”라며 “일부 시·도지사들이 주장하는 개헌론은 탄핵국면 전환용, 선거용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이 정당의 유불리를 넘어 ‘지방분권 개헌’에 나서야 한다는 점엔 공감하는 분위기다. 노민호 공동대표는 “정말 지방분권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이며 지방정부의 모든 권한은 주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하고 주민 자치권과 자치법률 입법권 보장 등을 헌법에 담겠다는 실천적 노력이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도 “현 국가운영체제에선 누가 대통령이 돼도 불행한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며 “정당의 유불리를 넘어 지금은 개헌논의와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분권개헌의 핵심 내용은 이미 다 나와 있다”며 “지방정부에 자치법률제정권, 과세권을 보장하고 주민 발안·투표·총회제도 등 주민자치권을 보장하는 게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풀뿌리·시민단체들도 ‘지방분권 개헌’ 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전국 17개 시·도 각 부문 풀뿌리 혁신가들이 모인 지역균형발전연대회의가 국회에서 창립행사를 열었고 지역경실련협의회는 지난 17일 ‘지방분권실현 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추진단 공동단장을 맡은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탄핵정국 이후 대처방안을 논의하면서 지역경실련 주도로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키로 하고 추진단을 구성했다”며 “개헌에 대한 입장이 같다면 법정단체인 시도지사협의회 등과 연대해 국회 청원, 조기대선 후보 공약요구 등의 활동을 벌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