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우크라 패싱 친러행보 가속

2025-02-21 13:00:04 게재

다자외교 무대서도 러 옹호 … 백악관 “우크라, 미국 비난 용납못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과 키스 켈로그 미국 대통령 러시아-우크라이나 특사(우)가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키스 켈로그 특사는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들과 만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배제(패싱)하고 러시아와 직접 담판을 통해 휴전협정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친러 행보를 가속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주요 7개국(G7)의 우크라이나 전쟁 3주년 성명에서 ‘러시아의 침공(Russian aggression)’이라는 표현을 넣는 데 반대했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때 “러시아의 침공”이라고 지칭했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 분쟁’(Ukraine conflict)으로 순화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 18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협상한 뒤 낸 자료에는 ‘우크라이나 분쟁’이라는 표현이 두 차례 들어갔다.

G7 정상들은 지난해 2주년 성명에서 러시아를 겨냥해 “즉각 이 침략 전쟁을 멈추고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조건 없이 완전하게 군을 철수하라고 촉구한다”고 밝히는 등 ‘러시아의 침공’이나 그와 유사한 표현을 5차례 넣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전쟁 발발 3주년에 맞춰 이달 24일 화상으로 열릴 G7 정상 회의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초청하는 문제도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고, 유엔총회도 3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영토 보존을 지지하고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 초안을 준비했지만 미국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리기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과 관련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를 비판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를 탓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하며 종전을 압박하고 있다. 백악관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일 보수성향 매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한 일을 볼 때 (젤렌스키가) 언론에 험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그들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많은 사람이 불만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자신의 불만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그들(우크라이나)은 (미국에 대한) 비난을 줄이고, 면밀히 살펴본 뒤 (광물)협정에 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전 협상에서 배제됐다는 우크라이나의 반발에 대해선 “나는 젤렌스키의 국가안보보좌관과 정기적으로 대화하고 있다. 키스 켈로그 특사도 지금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반박한 뒤 “우리는 동맹국들과 협의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와도 협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왈츠 보좌관은 “외교에는 이를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을 한 테이블에 모이게 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셔틀 외교’라고 한다”면서 “우리는 한쪽과 대화하고, 다른 쪽과 대화하고 있다. 그런 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와 리더십을 통해 전진하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미국이 러시아엔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러시아의 협상 의지에 따라 미국이 러시아에 가하고 있는 제재를 조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베센트 장관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종전 회담 진행 상황에 따라 대러시아 제재 강화와 완화 양쪽을 모두 고려하는가’라고 묻자 “그건 아주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조만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미러 정상회담 관련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질의에 “일정을 공개하지 않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을 아주 빨리 끝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에 따르면 미러 정상회담은 이르면 이달 말 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회담에서 종전 협상과 대러 제재 조정이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을 ‘아주 빨리 끝내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친러 기조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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