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계좌추적권 통제 놓고 “남용 방지”, “증거인멸 우려 커”

2025-02-21 13:00:03 게재

‘당사자에 통보 의무’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국회 정무위 검토보고 “종합적 고려 필요”

금융감독원 계좌추적권을 통제하는 내용의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놓고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를 통해 권한 남용 방지를 위한 개정안 논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금감원은 조사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정명호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요청한 금융거래정보를 추후 계좌소유주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천준호·이정문 의원 각각 대표발의)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했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은 금융회사가 거래정보 등을 제공한 경우 제공한 날부터 10일 이내에 ‘제공한 거래정보등의 주요 내용, 사용 목적, 제공받은 자 및 제공일’ 등을 명의인에게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장·예금보험공사 사장이 금융회사 등에 대한 감독·검사, 금융회사 등 내부 또는 상호간의 업무상 필요한 경우 또는 외국 금융감독기관과의 협조를 위해 요청하거나, 자본시장법에 따른 거래소가 이상거래의 심리 등을 위해 요청하는 경우에는 명의인에 대한 통보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최소 감시 장치 마련” =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금감원의 ‘영장없는 계좌추적’은 당사자에게 통보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며 “금융당국의 계좌추적권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장치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천 의원은 시중 10개 은행들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시중 10개 은행사들이 국회에 제출한 통계를 보면 금감원이 요구한 금융거래정보는 윤석열 정부(2022년 7월 ~ 2024년 6월)들어 연 평균 1만4253건에 달해 문재인 정부(2020년 1월 ~ 2022년 6월)의 6647건 대비 2배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검사 출신의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이후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정 수석전문위원은 보고서에서 “금융실명법에 따른 거래정보등의 제공 사실 통보 대상을 확대할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원칙에 보다 부합하게 돼 명의인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제공요청과 관련한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헌재는 해당 규정이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통지절차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헌법상 적법절차원칙을 위배해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원칙이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작용 전반에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정 수석전문위원은 또 “금감원의 금융회사 검사 또는 불공정거래 조사 과정에서 영장 없이 거래정보 등이 제공된 이후 검찰 등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또는 고발 등이 이뤄지는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 명의자에 대한 제공 사실 통보를 통해 금감원의 권한 남용 우려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적시했다.

그는 “동일한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또는 감사 과정에서 금감원의 경우 명의자에 대한 통보 의무가 없으나, 감사원은 명의자에 대한 통보 의무가 있으므로, 기관 간 형평성 측면을 고려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발까지 1년 걸려, 수사 착수 전 증거인멸 우려” = 금감원은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금감원은 “내부자거래 및 불공정거래행위 등에 대한 조사업무의 특성상 거래정보 등 제공 사실이 명의인에게 통보될 경우 수사기관의 증거확인 전 증거인멸·도주 등의 우려가 크고, 주요 증권범죄의 경우 수사의뢰 또는 고발까지 1년 이상 시간이 소요돼 통보유예 조항을 활용하더라도 검찰 수사 착수 전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여전히 상존한다”고 밝혔다.

또 “금감원이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거래정보 등을 제공받았으나 혐의 대상에서 제외된 명의자의 경우 제공 사실을 통보받게 되면 혐의자로 조사받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어, 국민에게 불필요한 오해와 불안감을 촉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수사기관과 금감원의 계좌추적권 차이도 강조했다. 수사기관의 경우 특정인에 대한 범죄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거래정보 등을 광범위화게 수집할 필요가 있어 영장을 통해 제공을 요구하도록 하되 금융회사 본점에 대한 일괄조회가 가능하다. 하지만 금감원은 영장주의의 예외를 인정받는 대신 특정점포에 대한 조회만 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정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안과 같이 거래정보 등의 제공 사실을 통보하는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헌법상 적법절차원리에 따른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금감원의 권한 남용 가능성을 방지하며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는 측면과, 금감원 조사 업무 등에 미칠 영향, 수사기관과의 차이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개정안대로 이를 확대하려는 경우에는 금감원의 의견을 고려해 체납자 등의 재산조회와 유사하게 통보 유예 기간을 제한 없이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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