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력에 무릎꿇은 젤렌스키

2025-02-26 13:00:01 게재

28일 미국-우크라이나 광물협정 예정 … ‘5천억 달러 조항’은 최종 삭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시절인 지난해 9월 27일 뉴욕에 있는 트럼프타워를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논란이 됐던 광물협정이 오는 2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공식 서명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 백악관 행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직접 워싱턴을 방문해 이번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정을 “매우 큰 거래”라고 평가하며 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이번 협정의 주요 골자는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희토류를 비롯한 주요 광물 자원을 미국과 공동 개발하고, 그 수익을 공유하는 것이다. 미국이 제시한 초안에는 △우크라이나 광물 개발 수익 5000억달러(약 716조원) 달성 전까지 미국이 기금의 100% 지분 확보 △미국 지원금의 2배 상환 요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경제에 막대한 장기 부채를 안기는 내용으로, 젤렌스키 정부가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결국 협상 타결을 위해 미국은 이 조항들을 삭제하고 대신 ‘광물·석유·가스 수익의 50%를 미-우크라 공동 기금에 귀속’하는 조건을 최종안에 담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정 체결 조건으로 미국의 확실한 안보 보장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명시적인 보장 대신 일반적인 수준의 안보 지원 약속만 포함했다. 미국 측은 우크라이나와 경제적 파트너십을 통해 사실상의 안보 보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협정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안정적 발전을 지원한다는 일반적 조항만 있을 뿐, 구체적 방어 체계나 군사 협력 내용은 빠졌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시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 군사 개입을 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초기 협상 단계에서 미국의 조건들을 “우크라이나 국민 10세대가 갚아야 할 부담”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미국이 요구한 ‘5천억 달러 수익 제공’ 조항은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 경제를 압박하는 부채로 간주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지속되는 전쟁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판단 아래 결국 일부 조건이 완화된 협정을 수용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정을 통해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에 대한 ‘보상’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전쟁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협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번 협정을 두고 우크라이나 정치권과 일부 여론에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위기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협정 체결 후에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협정 체결로 가닥을 잡은 배경에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확보할 필요성이 크다는 현실적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협정 체결을 통해 광물 자원을 활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동시에 동유럽 내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속한 해결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정은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를 변화시킬 주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은 이번 협정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EU는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을 미국이 독점할 경우 향후 유럽의 에너지와 자원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미 체결된 EU-우크라이나 간 양해각서 기반의 자원 협력이 미국과의 이번 협정으로 인해 약화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국제개발 NGO ‘글로벌 위트니스’는 성명을 통해 “이번 협정은 우크라이나의 자원을 전리품처럼 취급하며, 전후 복구보다 미국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을 경제적 도구로 취급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전쟁 과정에서 겪은 희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광물협정 체결은 경제 협력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국제사회에서도 상당한 논란과 후폭풍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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