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총재 ‘정부 구조개혁 10년 방기’
저성장 장기화, 구조조정 시급성 강조
“금리인하·추경은 일시적인 진통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빠진 원인으로 정부 책임을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구조개혁을 방기한 결과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지 않고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총재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가 가장 뼈아프게 느껴야 될 것은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은 것”이라며 “새 산업을 도입하려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사회적 갈등을 감내하기 어려워 이것저것 피하다 보니 새 산업이 하나도 도입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총재 발언은 올해와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각각 1.5%, 1.8%에 그칠 것이라는 한은 경제전망에 대한 질의와 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이 총재는 이날 향후 성장 전망에 대해 지금과 같은 한국경제의 실력으로는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이 장기화될 수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금리 인하와 추경 편성 등 통화 및 재정정책으로는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추경은 단기적으로 성장률 떨어질 때 보완하는 역할”이라며 “진통제 가지고 옛날과 같이 훨훨 날게하는 그런 효과는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정부 책임을 거론한 데는 중국이 한국 제조업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와 공포도 반영됐다는 풀이다. 실제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 편입된 이후 지난 20년간 글로벌 공급망 구조에서 한국이 누렸던 대중국 경쟁우위 구도는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특히 중국은 10여년 전부터 ‘제조2025’를 내걸고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산업 기술력과 경쟁력을 잠식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로봇, 바이오 등 미래 첨단산업에서도 중국에 크게 밀리고 있다. 이 총재는 이런 결과가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가 과감한 구조개혁을 주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이 총재는 그동안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노동시장 개혁, 교육개혁, 부동산시장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본적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한은은 올해도 이러한 구조개혁 과제와 관련 정년문제와 임금체계 개편 등을 적극 제기할 것을 알려졌다.
한편 한은은 이날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올해 실질 GDP 성장률을 1.5%로 예상했다. 지난해 11월 내놨던 전망치(1.9%)에 비해 0.4%p나 낮춰 잡았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1월과 같은 1.9% 상승을 점쳤고,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750억달러를 전망해 지난해 11월(800억달러)보다 50억달러 낮췄다.성장률 세부 지출항목별 예상치도 일제히 낮췄다. 민간소비는 2.0%에서 1.4%로 하향 조정했고, 수출도 1.5%에서 0.9%로 성장세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설비투자는 3.0%에서 2.6%로 하향 수정했다. 건설투자는 -1.3%에서 -2.8%로 감소폭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글로벌 무역갈등 전개양상이 가장 큰 불확실성 요인인 점을 감안해 대안적 시나리오를 분석했다”면서 “미국과 다른나라가 상호보복하는 무역갈등이 심화하는 비관적인 시나리오하에서는 성장률이 1.4%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