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선사'연안여객선 운항손실부담' 해법 못찾아

2025-02-28 13:00:01 게재

울릉도 운항선사 법원에 회생신청 … 국회 ‘여객선공영제법안’ 발의

섬연구소 “연안여객선 방치하는 것은 조선시대 ‘공도정책’과 비슷”

울릉도(동해) 매물도(남해) 백령도(서해) 등 동·서·남해안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여객선들이 운항적자로 불안한 경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문재인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여객선공영제를 국정과제로 추진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그 사이 한 해 40만명 안팎의 관광객이 이용하는 울릉도 뱃길 운항선사들마저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고,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운임할인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호소하고 있다.

울릉도는 9000여명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독도와 연결된 해양영토의 보루지만 뱃길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강제윤 섬연구소장은 “뱃길이 끊기거나 불안정하면 섬에 살 수 없고, 관광객도 갈 수 없다”며 “지금 생각할 때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조선시대 공도정책과 연안여객선의 불안정한 경영을 방치하는 정부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포항~울릉을 운항하는 대형 쾌속 여객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를 운영하는 대저페리가 누적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부산회생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고, 법원이 회생절차를 시작했다. 내일신문 자료사진

◆연안여객선 100개 항로 총 매출 4000억원 수준 = 2019년 9월 청와대 인터넷에는 연안여객선 공영제 정책을 조속히 수립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세월호 사고 후인 2014년 9월 2일 해양수산부는 공영제 실시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5월 8일 인천 유세에서 여객선 공영제 실시를 공약한 바 있다”며 “공영제는 섬 주민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 그리고 내외국 관광객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청원 사유를 밝혔다.

섬주민과 섬에 대한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섬의 날(매년 8월 8일)을 제정해 첫번째 기념식을 치른 직후였다. 청원인은 “섬의 날 행사가 형식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장선상에서 여객선 문제를 풀고자” 청원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고, 청원을 해결하지 못했다.

윤석열정부는 문재인정부에서 이루지 못한 연안여객선 공영제를 국정과제에 담아 2025년까지 시행하겠다며 시한을 정해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 예산이 마련되지 않아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됐다.

해수부는 채산성이 낮아서 민간선사가 운영을 기피하는 항로를 국가보조항로로 지정해 운항결손금을 지원한다. 민간선사가 운영하지만 적자가 나면 보조하는 방식과 정부 선박을 민간선사에 위탁해 운영하면서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이 있다.

현재 29개 항로가 지정돼 있고, 이 중 12개 항로가 정부 선박을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국 100개 항로에 55개 연안여객선사가 150척의 여객선을 운항 중인데 총 매출액은 4000억원 안팎이다.

보조항로는 전체 항로 중 30% 가까이 되지만 이들 항로의 매출액은 전체 항로 매출액의 1% 수준인 40억원 내외다.

정부는 공영제 도입을 앞당기기 위해 보조항로 전체를 공영제로 하는 방안 대신 정부 선박을 민간에 위탁하는 항로를 우선 공영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위탁하는 대상을 민간선사가 아닌 공공기관으로 하는 방안이다. 국회에서도 장동혁(국민의힘) 의원과 서삼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지난해 8월과 7월 관련 내용을 담은 해운법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지원했지만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못했고, 재정당국도 현행 제도 아래서 여객선 안전과 서비스를 개선해 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해수부 관계자는 “섬 주민이 감소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기상악화 등 요인으로 관광객도 줄었다”며 “여객선 이용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선사들의 적자 폭은 커지고 서비스 개선도 더딘 상황에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릉도 여객선사 운항손실금 해법 국민권익위 손에 = 공영제가 표류하는 사이 포항~울릉 정기여객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를 운항하는 선사 대저페리가 부산회생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고, 20일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대저페리는 지난 2021년 울릉군과 공동협약을 맺고 670억원을 투자해 선박을 건조, 2023년 7월부터 운항을 시작했다. 건조자금 중 15%는 자부담, 85%는 한국해양진흥공사 보증으로 부산은행 산업은행에서 빌렸다.

울릉군에서 공모하는 방식으로 건조한 대형 여객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가 운항하자 울릉도 주민과 울릉도 독도 관광객들은 환영했다. 울릉도 독도 뱃길의 결항도 줄어들고 배멀미도 줄었다.

하지만 대저페리는 2023년 30억원, 지난해 27억원 등 적자가 계속되고 울릉군에서 지원하기로 한 운항결손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회생신청을 한 것이다.

대저페리는 7월까지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법원이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파산하게 된다. 계획안에는 울릉군의 운항결손금 지원, 대출금에 대한 원리금 상환 등에 대한 해법이 나와야 하지만 대저페리와 울릉군은 운항결손금 지원을 놓고 이견을 줄이지 못한 상태다.

27일 정 홍 대저페리 사장은 “울릉군이 지급하기로 한 운항결손금을 빨리 지원해 달라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청원했다”며 “권익위 답변이 나오면 울릉군이 선사지원을 둘러싼 배임 논란을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여객선은 섬주민들의 발과 같다”며 “시간을 끌지 않고 권익위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와 함께 포항~울릉을 운항하는 여객선 뉴씨다오펄호도 적자운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씨다오펄호를 운영하는 선사 울릉크루즈는 지난해 11월 누적된 적자로 주민들에게 지원하던 ‘주민운임료 20% 할인’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울릉군에 공문을 보냈다. 조현덕 울릉크루즈 대표는 “지난해 35억원 적자가 났는데, 어떤 선사도 적자가 계속되면 운항할 수 없다”며 “해수부와 울릉군에서 해답을 내놓아야할 때”라고 말했다.

남해안 통영 매물도를 운항하는 매물도해운 소속 여객선 2척은 지난해 말부터 휴항 중이다. 쌓인 적자로 인한 경영악화가 이유다.

서해안 백령도를 오가는 뱃길은 운항 선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 옹진군에서 2020년부터 백령항로 차도선 도입을 위한 민간 선사 모집을 진행 중이지만 지난해까지 1~9차 공모가 무산됐고 최근 마감된 10차 공모에선 3곳의 민간선사가 응모한 상태다.

지지부진한 여객선 공영제 추진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새롭게 법안을 제정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서삼석(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 18일 “연안여객선 공영제의 조기 실현을 위해 기존의 보조항로를 공영항로로 지정하고 공공기관 등에 공영항로의 운영을 위탁할 수 있도록 해 해상교통의 안정성을 높이고자 한다"며 ‘해상대중교통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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