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지사협 분권개헌안 일파만파
사전 협의 없이 발표해 논란 자초
오랜 지방 숙원 정략적 의제 추락
유정복 인천시장이 4일 시도지사협의회 이름으로 발표한 지방분권형 개헌안에 다른 시·도지사들이 일제히 반대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개헌안에 대통령 불소추 관련 조항과 선거관리위원회를 행정부에 두는 조항을 포함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개헌 시기와 관련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가정한 듯한 내용까지 끼워 넣어 논란을 키웠다.
5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유정복 인천시장이 시도지사협의회장 자격으로 4일 오후 2시 국회에서 발표한 지방분권형 개헌안은 사전에 시·도지사들을 포함한 4대 협의체의 사전 동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리에 조재구(대구 남구청장)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과 김현기(충북 청주시의회 의장) 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이 함께 했지만, 이들 역시 각자 속한 협의회의 사전 논의 없이 참석했다. 유 시장은 이날 발표한 개헌안에 대해 “시도지사협의회가 제안하고 지방 4대 협의체가 뜻을 함께 하는 개헌안”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이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이날 발표한 개헌안은 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지방 4대 협의체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합의되지 않은 무리한 조항들이 문제가 됐다.
실제 유정복 시장발 개헌안에는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 특권(제84조)에 대해 ‘재임 중에 발생한 형사사건에 한해 소추할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직접 겨냥한 조항이다. 개헌안은 선거관리위원회를 일반행정부와 마찬가지로 감사원 피감기관이 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또한 현재 논란 중인 사안이다.
대통령 선거 시행일을 명시한 것을 두고도 반발이 이어졌다. ‘개헌 이후 실시하는 최초의 대통령선거는 헌법 시행일로부터 100일 이내에 실시하고, 처음 당선된 대통령 임기는 2028년 5월 말까지로 한다’는 개헌안 부칙이 문제가 됐다. 이는 조만간 나올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탄핵 기각과 윤 대통령 조기 하야를 가정한 일정이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반대 의사를 밝힌 시·도지사는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홍 시장은 유 시장의 국회 기자회견이 있기 전 이미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정복 인천시장이 추진하는 개헌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후죽순 난무하는 정략적인 개헌론보다는 차분하게 1년 이상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시도지사협의회 감사를 맡고 있는 강기정 광주시장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강 시장은 “지금은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닌 탄핵을 완수할 때”라며 “특히 대통령 불소추 조항이나 선관위를 행정부에 두는 조항 등은 시도지사협의회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시·도지사들의 반발도 거셌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사견이 아닌 시도지사협의회 명의로 발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고 지적했고, 김동연 경기지사는 “(사전에) 어떠한 논의를 한 바 없으며 조율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시·도지사 공동명의로 발표할 수 없는 사안이며 유정복 시장의 사견”이라며 평가절하했고, 이철우 경북지사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에 반대한다”고 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사실을 왜곡·호도한 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며 유 시장을 직격했다.
지방의원들도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은 “(개헌안은) 시·도지사 안이고 시도의장협의회와는 협의가 안 된 것으로 안다”며 “협의해도 내용상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합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성민(부산시의회 의장) 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은 절차상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 출장 중인 안 협의회장은 4일 내일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시도지사협의회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았지만 시·도 의장과 시·도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 적절한 의견수렴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도지사협의회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신일·곽태영·방국진·최세호·이명환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