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차입·고가 인수에 ‘승자의 저주’

2025-03-05 13:00:09 게재

불투명해진 홈플러스 투자금 회수에 MBK도 ‘휘청’

‘쩐의 전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악영향 미칠 듯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유통업계에서는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과도한 차입에 의존해 고가에 인수하면서 결국 홈플러스가 경영 악화에 빠진 이른바 ‘승자의 저주’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부에서는 홈플러스 경영 실패를 자인한 모양새라 MBK의 고려아연 인수전에도 악영향 미칠 것으로 보인다.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MBK는 2015년 영국 테스코에서 홈플러스 지분 100%를 인수했다.

홈플러스 인수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재매각 목적 기업인수(바이아웃)’라 큰 수익을 거둘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이런 이유로 MBK는 당시 경쟁자인 KKR·어피니티 컨소시엄으로 홈플러스 우선협상자 선정의 추가 기울자 인수 금액을 대폭 올려 계약을 따낸 것으로 전해졌다.

◆오래가지 못한 기대감 = 하지만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유통시장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대형마트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비효율 매장과 직원을 감축하고 점포 효율화에 집중했다.

더 큰 문제는 홈플러스가 경쟁사 대비 과중한 부채로 재무 부담이 발목을 잡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MBK가 차입매수(LBO)를 통해 고가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MBK는 지난 2015년 9월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5조원을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받아 인수자금을 충당했다. 대출 5조원 중 4조3000억원은 은행 선순위 대출이고, 7000억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조달했다.

MBK는 그동안 점포 20여개를 팔아 4조원가량 빚을 갚았다. 일부 점포는 매각 후 임대해 사용하기 때문에 임대비용이 계속 지출된다.

◆매장 등 부동산 팔아 부채 상환 = 홈플러스 직원들은 MBK가 홈플러스 부동산을 팔아 인수차입금을 갚고, 영업이익 대부분을 차입금 이자 비용으로 지출하면서 시설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다시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홈플러스 매장은 지난 2019년 140개에서 현재 120여개로 줄었다.

또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가 발간한 ‘투기자본 MBK의 홈플러스 먹튀 매각보고서’에 따르면 MBK 인수 이후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지출된 이자 비용은 3조964억원이다. 이는 같은 기간 홈플러스의 영업이익 4713억원보다 2조5600억원이 많다.

홈플러스는 MBK로 넘어가기 전인 2014회계연도(2014년 3월~2015년 2월) 24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2022년과 2023년엔 각각 2602억원과 199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MBK는 홈플러스 투자금 회수를 위한 인수자를 찾기 어려워지자 슈퍼마켓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점포 310여개를 우선 분리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홈플러스의 2024년 11월 말 기준 순차입금은 5조312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94억원 증가했고, 총차입금은 5조4620억원으로 차입금의존도가 60.3%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토지 재평가에 따른 자본증가에도 대규모 당기순손실 반복에 따른 자본 감소 영향으로 2024년 11월 말 부채비율이 1408.6%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점포 자산 유동화 등을 통해 차입금을 상환하고 부족한 경상 현금흐름에 대응하는 외부 의존적 현금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금리와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자산매각 여건이 저하된 점도 부담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위상과 평판 실추 우려 = 이번 사태는 MBK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1등 사모펀드라는 위상과 평판 실추뿐 아니라 홈플러스 구성원들과의 내홍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해 투자금 회수에 문제가 발생하면 향후 투자자 모집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MBK가 참여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도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MBK는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측과 형사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양측 모두 회사 주주들을 대상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경영권 분쟁 중에 경영 실패를 자인한 모양새라 MBK로 인수를 반대하는 기존 고려아연 경영진과 직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1월 한국노총 금속노련 고려아연노조는 대국민 성명서를 통해 “약탈적 사모펀드로부터 고려아연을 지켜달라”면서 “99분기 연속 흑자의 세계 1위 비철금속 회사 고려아연을 투기자본과 실패한 기업이 기습적으로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MBK에 대해 “홈플러스를 비롯해 ING, BHC, 씨엔엠 케이블 방송 등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 그들이 기업을 인수하며 내세웠던 주장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며 “국가기간산업 고려아연이 더 이상 투기적 사모펀드의 이익 회수를 위한 수단으로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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