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사직처리 “부당해고”
법원 “사직 의사 철회했다면 계약 종료 아냐”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한 직원에게 휴가를 권유한 뒤 돌연 사직 처리했다면 부당해고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11부(김준영 부장판사)는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사 소속 상품기획자(MD)로 쇼핑몰을 관리하던 B씨는 2023년 3월 13일 회사 대표에게 “팀장과 대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피해를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취지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대표는 “빠른 시일 내에 좋은 방법을 찾아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B씨는 다음 날 서명하지 않은 사직서를 촬영해 보냈다. 대표는 B씨는 사직서 제출 3시간 뒤 전화를 걸어 “MD 개편을 할 참”이라며 “차근차근 풀어나갈 테니 조금 휴식을 취해라. 부장을 통해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B씨는 부장 등과 업무 조율을 위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돌연 대표에게 “가해자와 분리 조치가 여의치 않아 근로가 어렵게 됐다”며 해고를 통보받았다. 그러자 B씨는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다.
A사 대표는 “사직서를 제출받아 수리한 것”이라며 합의에 따라 근로계약이 종료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지노위와 중노위는 모두 B씨의 손을 들었다. 이에 A사가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B씨의 사표 제출은 확정적 의사표시가 아니라 자신이 겪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사직을 하겠다는 의사표시”라며 “그 후 B씨는 대표이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사직의 의사표시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B씨가 일부 업무를 재택으로 처리했고 다른 동료들도 B씨가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점 등을 종합하면 합의에 의한 근로계약 종료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해고 통보 과정에서 A사가 B씨에게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 사건 해고는 근로기준법 제27조를 위반한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A사가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