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위장사업장 10년새 4배로 급증
2015년 3만8000개에서 지난해 14만5000개 … “적발돼도 불이익 없는 입법공백이 급증 원인”
#. 대전 P카페 김소희씨는 근로시간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 80시간을 근무했고 사업주에게 폭언까지 들었지만 고용노동청 신고가 무력화됐다. 대전 P카페는 유명 음식점 등을 수십개 운영하며 직원 3000명이 넘는 회사다. 사업주 J씨는 P카페를 창업하면서 대전에 3개의 지점을 배우자 아들 딸 등 가족명의로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재계 50위 K석유화학그룹은 사업 다각화 및 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K특수가스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유지하다가 총괄공장장으로 근무하던 이정환(가명)씨는 전남 여수로 내려가 근무했지만 인사위원회도 없이 부당해고를 당해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진행 중에 있다.
상시근로자가 5인이 넘는데도 근로기준법을 회피하기 위해 5인 미만으로 위장한 ‘가짜 5인 미만’ 의심 사업장이 최근 10년 동안 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 입법연구분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더불어민주당 김주영·김태선·박홍배·이용우 의원이 공동주최한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방지 및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를 위한 국정감사 후속 토론회’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 의원(경기 김포갑)이 국세청 자료를 받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근로소득자는 5인 미만이나 사업소득자를 합산하면 5인 이상되는 사업체는 2015년 3만7994개에서 2024년 14만4561개로 4배 가량(38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 증가율을 보면 임대·사업 서비스업이 1900%(8→152개)나 증가했다. 이어 건설업 861.9%(42→362개), 운수·창고·통신업 705.8%(52→367개) 순으로 집계됐다.

‘5인 미만 위장 의심 사업장’이란 고용보험 기준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이지만 사업장 쪼개기 또는 근로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이 의심되는 사업장을 말한다. 구체적인 유형으로는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두개 이상의 사업자 또는 법인으로 분리한 ‘사업장 분리 위장형’ △고용한 직원 중 4명 이하만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다른 직원들은 사업소득자로 위장한 ‘사업소득자 위장형’ △이 두 가지 유형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 위장형’으로 구분된다.
현재 주 52시간, 연차휴가,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 부당해고 구제 등 근로기준법상 주요 규정들은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임에도 여러개로 쪼개거나 근로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해 5인 미만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은성 공인노무사(노노모 입법연구분과장)는 발제에서 “5인 미만으로 위장한 사업장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5인 이상으로 판단되더라도 체불금품을 지급하거나 부당해고를 수용하면 실질적인 손해가 없다”면서 “‘5인 미만 위장 의심 사업장’이 급증한 것은 위장이 적발되더라도 사실상 불이익이 없는 입법 공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 노무사는 “고용노동부의 소극적 판단 태도로 인해 마땅히 인정돼야 할 위장 사업장이 소송에서 인정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K석유화학그룹의 K특수가스의 경우 사업의 독자성이 없고 인사·재무·회계의 독립성도 없다”면서 “사업장 분리 위장형 중 ‘부서 분리형’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사내벤처나 태스크포스(TFT) 대신 ‘부서 분리형’을 통해 5인 미만으로 위장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할 유인은 차고 넘치는데 논의되고 있는 정부 지원금까지 더해지면 위장사업장은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 “‘5인 미만 위장사업장 방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 사회적 활동단위로 볼 수 있을 정도의 경영상의 일체성과 유기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보아 별개의 법인의 상시 근로자 수를 합산해야 한다고 밝힌 대법원(2023두57876) 판결의 의의를 발제했다.
박 교수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제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탄생하였기 때문에, 노동관계의 향유자로서 그 수익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용자를 찾고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