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책은 약달러 지지하나' 투자자들 긴장
감세·규제완화 뒷전 밀리고
관세전쟁에 달러약세 전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십 년간 지속된 국제질서에 전례 없는 도전을 가하면서 미국 달러의 위상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WSJ 달러화 인덱스는 지난 14일 99.26으로 지난해 11월 5일 미 대선일 이전 수준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대선일 이후 달러화 가치는 강세 랠리를 이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예고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정책 기조는 공화당 정권의 전통에 맞춰 감세 및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둘 것이라는 게 경제계 안팎의 기대였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성장이 더 가팔라 질 것이란 전망과 맞물려 주가 상승, 달러화 가치 강세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몇 주 새, 투자자들의 희망은 두려움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트럼프정부가 우방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확대하자 관세가 협상 수단에 불과할 것이란 이른바 ‘트럼프 풋(put)’기대는 사그라들었다. 여기에 연방정부 구조조정이 과격하게 진행되는 일까지 겹치면서 감세나 규제 완화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반면 유로화 가치는 강세 압력을 받는 분위기다.
미국이 동맹국을 위한 자국의 국방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강화한 가운데 유럽 주요국들이 군비 지출 확대와 재정 준칙 완화를 검토하고 있는 게 유로화 가치를 올리는 주된 배경이 됐다.트럼프의 외교 정책 변화에 따른 유럽 내 군비 증강 움직임도 한몫을 하고 있다.
금융자문회사 카슨 그룹의 글로벌 시장 전문가 소누 바르기즈는 “이번 유로화 강세는 일시적 조치가 아니라 정책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은 최근의 달러화 약세 흐름이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기조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그동안 국제금융 시스템은 미국이 동맹국에 안보 지원을 해주고, 그와 맞물려 해외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사주면서 달러화가 강세 지위를 유지하는 식으로 유지됐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이런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에 대한 국방비 지출을 줄이겠다고 압박하면서 동시에 미국 내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달러화 약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지명된 스티븐 미런도 기존 연구 보고서에서 달러화 강세의 탈피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해왔다.
다만, 달러화 약세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한 대로 전개될지는 불확실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브래드 세처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공약이 가져올 연방 재정적자로 인해 미 국채 수익률이 높게 유지되고 이는 달러화 강세 압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 모두 경제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투자금이 미국 이외 지역으로 갈 가능성도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달러화 강세를 유지하는 근간인 미국으로의 투자금 유입이 갑자기 방향성을 바꿀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은 “이 모든 상황이 불확실성을 만들고 있지만, 한편으론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미국 말고 달리 어디로 갈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