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질 받던 국회…계엄해제·탄핵소추·연금개혁 ‘가능성’ 열어
구조개혁 등 추가 과제 많지만 여야 합의는 성과
탄핵정국·극한 대치 상황서 국면 바꾼 선택 눈길
“정말 꿈 같다”
국회가 20일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의결한 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에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말 이해관계가 복잡한 국민연금의 개혁이고, 그것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여야가 갈등이 치열한 이 때, 이렇게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이끌어 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세대별 이해관계를 조정할 구조개혁 등 연금특위에서 다뤄야 할 추가 과제가 많지만 18년 만에 연금개혁의 물꼬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성과로 평가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합의문 중간에 우원식 국회의장의 서명이 포함된 것 자체가 그간의 진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사진)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구체적 방법론을 놓고 대립해 왔던 여야가 합의점을 찾아낸 것의 의미가 크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된 현안을 더 미룰 수 없다는 부담이 각각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안은 재정안정성을 강조해 온 여당과, 소득대체율 상향 등을 약속한 야당의 요구를 반영했다.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재석 277명 중 찬성 194명·반대 40명·기권 43명으로 통과됐다.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한민국 연금제도가 보다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라며 “향후 연금특위에서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보다 근본적인 개혁 논의를 이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개혁안 통과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조속히 시작되도록 전력을 다해 연금제도 전반의 구조를 개혁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 합의처리 배경 가운데 우원식 의장의 뚝심있는 중재도 한 몫 했다는 평가다. ‘합의처리’ 문구를 놓고 여야가 팽팽하며 파경 직전까지 흘러갈 때 우 의장은 양당 원내대표에게 ‘연금개혁 관련 합의문’에는 ‘안건은 여야가 합의로 처리한다’는 문구를 넣되, 연금개혁특위 구성의 건에는 합의 처리 문구를 넣지 않는 것으로 절충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 의장은 “여기서 끝이 아니고 추경을 반드시 해 내야 한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국회는 국민의 삶의 문제를 제일 앞에 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연금개혁 논의가 민생 현안에 대한 여야의 합의처리 가능성을 높였다는 측면에서 평가 받는다면 12.3 계엄 사태와 관련한 계엄령 해제 의결과 탄핵소추안 가결 등은 탄핵정국 국면을 바꾼 결정적 장면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 대통령은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내겠다”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오후 11시 계엄사령관 명의의 포고령이 전국에 발령됐다. 계엄선포 직후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여 “계엄 해제”를 촉구했고, 야당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의원들이 국회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에 들어왔다. 군 헬기가 국회에 착륙했고, 우원식 의장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국회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며 계엄 해제 의결을 추진했다. 4일 0시 34분쯤 무장 계엄군이 국회 본관 2층에 진입하면서 충돌이 벌어졌고, 0시 47분 본회의가 개회된 후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재석 190명 의원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윤 대통령은 이후 오전 4시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했고 곧이어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했다.
국회가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계엄군을 막아서고 국회의 의결을 촉구한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해 2시간 30분 만에 계엄을 해제한 것이다. 여야 대립과 강대강 대치로 지적을 받아온 국회가 불법계엄에 대한 빠른 조치로 내란확산을 막았다는 국민적 신뢰를 받는 계기가 됐다.
당시 한국갤럽이 실시한 주요인물 신뢰도 조사(2024년 12월 10~12일. 이하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국회를 대표한 우원식 의장에 대해 “신뢰한다” 56%로 여야정 인물가운데 가장 높은 신뢰도를 보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 과정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12월 4일 비상계엄이 해제된 후 야 6당은 당일 오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12월 7일 오후 5시 44분 탄핵소추안이 상정되고 6시 18분부터 표결을 시작했다. 저녁 9시 22분까지 진행된 표결에는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195명만 참석해 투표 불성립으로 탄핵소추안이 폐기됐다.
이날 표결에는 야당 소속 의원 192명과 국민의힘 소속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 등 3명만이 참여해 총 195명이 투표에 임했다. 국민의힘 소속 105명은 표결에 불참했다.
야 6당은 12월 12일 두번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13일 본회의에 보고한 후 12월 14일 오후 4시 탄핵소추안 상정과 함께 표결이 진행됐다. 204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85명은 반대했다.
우원식 의장은 이날 5시쯤 가결을 선포하며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 순간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께서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 용기와 헌신이 이 결정을 이끌었다”면서 “국회와 국회의장은 이 사실을 깊이 새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한 다선의원은 “20년 넘게 정치하면서 ‘잘했다’는 격려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탄핵소추안 가결 후 국민의힘 대표가 교체되는 등 정치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으나 비상계엄 등으로 촉발된 격변의 큰 흐름에서 국회의 결정이 중요한 매듭을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회의 탄핵소추 결정을 넘겨받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국민적 신뢰(헌재 신뢰 60%, 헌재 결정 수용 55%. 전국지표조사 3월17~19일)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