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사회적 대화

전환기 복합위기 극복에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장애

2025-03-28 12:59:59 게재

노·사·정치권, 자기이익 극대화하면 중견국 추락 … “노사정 신뢰, 정치적 리더십 회복 기반 사회적 대화 구축해야”

노사정이 1월 23일 ‘계속고용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이후 두달 만에 만났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고용노동부 한국노동연구원과 함께 26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전환기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해법, 그리고 사회적 대화’ 토론회에서다. 다만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윤석열 파면 촉구 단위노조 대표자 및 간부 결의대회’ 참석을 이유로 불참하고 대신 류기섭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한국노총은 12.3 내란사태 직후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당초 이날 토론회를 계기로 경사노위 복귀가 예상됐었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토론회 참석이 복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 선고가 늦어지면서 사회적 대화 정상화도 밀리는 모양새다.

류 사무총장은 “복합위기 과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며 “정부개입 지양과 노사 중심성 원칙을 확립해 사회적 대화의 틀을 튼튼히 세우고 노사정의 상호신뢰가 빠르게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 등 구조개혁이 절실하다”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위기 때마다 모두 힘을 합쳐 이를 극복해왔던 저력을 바탕으로 노사는 서로를 존중하고 대화하면서 지혜를 모으고 정부는 노동시장의 창의적 해법을 찾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도전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며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혁신형으로 구조적 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가 대립과 갈등이 만연한 현실을 단절하고 소통과 타협의 시작을 알리는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두달 만에 한자리에 모인 노사정 대표자들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26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전환기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해법, 그리고 사회적 대화’ 토론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12.3 내란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중단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이날 토론회를 계기로 재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저성장과 인구위기 △인공지능(AI)과 로봇의 확산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세계공급망 개편 등 전환기적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신뢰와 정치적 리더십 회복에 기반한 사회적 대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전환기 사회적 대화의 역할과 과제’ 주제발제에서 “전환기적 4대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한국형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정점을 찍고 중견국가에 정체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서 “노사와 정치권이 각개약진하며 자기이익 극대화에만 나선다면 과거와 달리 한국은 위기극복에 실패하고 선진국이 아닌 중견국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의 일환으로 시작된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위원회,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걸쳐 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제도화됐다.

최 원장은 “한국은 유럽과 달리 노사단체의 조직력이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대화·타협을 통해 지난 30년 동안 경제위기 때마다 일자리 타협과 주요 노동법 개정을 위한 협의의 전통을 만들며 한국형 대화기구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원장은 “보수 17년, 진보 15년 동안 모든 정권이 고용위기 극복과 노동개혁을 외쳤지만 근원적인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노사관계 혁신에는 미치지 못했다”면서 “노사는 자기주도적 개혁보다 정부나 정당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은 법치 강화로 노사관계 안정화에 기여했으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에는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맞이한 전환기적 위기를 1987년과 1997년 위기를 합쳐놓은 수준이라는 진단이다. 최 원장은 “1987년 이후 최악의 민주주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정치 지도자들이 대화와 타협 대신 완승만 노리면서 과거와 달리 갈등이 제도적 틀 안으로 수렴되지 않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서 “노사단체도 협의나 교섭,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떠나 법원이나 광장, 정치권을 찾아 나서며 노사관계 시스템 밖으로 끌고 나가 상생의 신뢰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문가 집단도 노사 또는 여야 진영의 한편에 설 것을 요구받으며 공정한 중재자의 목소리를 잃고 공익의 대변자라는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적 평판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1987년 정치사회적 위기와 1997년 경제위기 극복의 원동력에 대해 “노사정 등 사회지도자들이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고 국력을 결집했던 탁월한 리더십”이라며 “지금의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 신뢰와 정치 리더십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노사정은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했다. 다만 노동계는 경사노위 독립성·자율성을 강조한 반면 경영계는 공익위원의 조정자적 역할 강화를 제기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은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적잖은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특히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편향된 이념을 투영하려는 인사들로 인해 현 정부 집권 이후 경사노위가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하며 사회적 대화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어떠한 외부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보다 강력하고 독립적인 권한과 기능을 갖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며 “사회적 대화를 헌법기구화해 명실상부한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국회발 사회적 대화 활성화와 이를 위해 ‘사회적 대화법’(가칭) 제정도 제안했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경영계가 사회적 대화에 대한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노동계도 상대방과의 타협 또는 양보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고 노동계가 정치적 이슈로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면 사회적 대화가 중단되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지적했다.

황 본부장은 “경사노위는 노사정이 효율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협의시스템을 강구하고 논의과정에서 필요한 통계, 해외 입법례, 학술적 근거 등 정보를 노사정에 충분히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며 “공익위원 또한 노사정 대화와 타협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적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등 논의를 촉진하는 간접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목소리를 담기 위해 참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기존의 노사정을 넘어 다양한 계층을 포함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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