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무역장벽 전방위 지적

2025-04-01 13:00:02 게재

USTR ‘2025 무역장벽 보고서’ 발표 … 국방부문부터 디지털까지 압박 강화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31일(현지시간) 백악관 웨스트윙 진입로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미국 상품에 대한 관세를 보여주는 차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치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다양한 무역장벽을 공식적으로 지적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3월 31일(현지시간)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이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드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보고서는 국방, 디지털, 투자, 농업, 서비스 분야 등 광범위한 영역을 망라하며, 특히 국방 절충교역(off-set trade)을 처음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무기나 군수품 계약이 1000만달러(약 147억원)를 초과할 경우 외국 기업에 기술이전이나 부품 생산, 군수지원 등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USTR은 이를 자유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로 간주했다. 특정 기술의 이전을 강제하는 방식은 미국 방산업체에 불공정한 조건이라는 입장이다. 그동안 한국의 절충교역은 방산 자립을 위한 정책으로 유지돼 왔지만 이번 문제 제기로 한미 방위산업 협력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디지털 분야에서는 사이버보안과 클라우드 서비스 관련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국가정보원이 공공 조달 IT 장비에 대해 한국 자체 알고리즘인 ARIA와 SEED를 의무화하고 있는 점, 공공기관 클라우드 보안 인증(CSAP)이 외국 기업에 과도한 진입 장벽이 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이 같은 국내 위주의 기준이 국제 표준(AES 등)을 사용하는 자국 기업의 참여를 차단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CSAP의 경우 데이터 현지화, 물리적 인프라 분리, 한국 내 운영 인력 상주 등의 요구사항이 미국 클라우드 기업의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망사용료 부과 법안도 문제로 부각됐다. 보고서는 외국 콘텐츠 제공업체만을 타깃으로 하는 방식이 한국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의 독점력을 강화하며, 이는 반경쟁적이라는 입장이다. 또 한국 국회에서 논의 중인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이 특정 외국 기업, 특히 미국 대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차별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미국 플랫폼 기업뿐 아니라 일부 한국 대기업에도 적용되지만 다수의 국내외 기업은 제외돼 형평성 논란이 있다.

데이터 이전 문제도 쟁점 중 하나다. 특히 위치기반 데이터의 해외 이전이 한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제한되고 있어 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지난해 2월 구글은 국내 고정밀 지도의 해외 반출을 요청했으나 한국 정부는 안보상의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미국은 한국이 전 세계 주요 시장 중 유일하게 이 같은 위치 데이터 수출 제한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투자 장벽도 여전하다. 한국은 방송, 통신, 신문, 항공, 육류 유통 등 여러 분야에서 외국인 지분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외국 법률회사의 한국 진출과 관련해 합작투자 요건과 49% 소유 제한, 업무 범위 제약 등으로 인해 실질적 진입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은 이러한 제한이 법률 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저해한다고 평가했다.

지식재산권(IP) 보호와 관련해선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나왔지만 위조품의 환적과 지리적 표시, 민형사 처벌의 실효성 등 일부 미비점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형 특급 배송을 통한 위조품 유통은 규제 사각지대로 지목됐다.

농축산물 분야에서도 수입 제한이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은 일부 미국산 농산물에 대해 관세율 할당제(TRQ)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전자변형생물체(LMO)에 대한 승인 절차는 복잡하고 장기적이라는 평가다. 또한 반추동물 성분이 포함된 애완동물 사료 수입 제한, 미국산 쇠고기 가공품에 대한 금지 조치 등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보고서는 이 같은 무역장벽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정신에 위배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향후 미국의 무역정책 수립에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4월 2일 발표 예정인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를 앞두고 공개돼 정치·외교적으로 큰 파장을 예고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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