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구조 해소 초기업교섭

기업별 교섭, 근로자 분단 고착…산별교섭체제 전환해야

2025-04-04 13:00:07 게재

노조 대표성, 조합원에서 근로자로 확대 … 단체협약 효력 확장, 고용성과와 높은 생산성 달성에도 영향

2024년 경제활동인구조사 8월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 중위 시간당 임금을 비교하면 300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의 임금을 100으로 볼 때 비정규직은 64이고 300인 미만 사업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각각 71과 49에 그쳤다. 이러한 임금격차는 30년 지난 뒤에 서울 아파트 한채 값 이상 차이가 났다. 한국노동재단이 2022년 12월 세전기준 통계청의 ‘기업 규모별 평균소득 현황’(연봉)을 분석한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30년간 일한 노동자의 총 누적 임금격차는 13억2360만원에 달했다. 30대 10년간 3억600만원, 40대엔 4억7520만원, 50대엔 5억4240만원으로 30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봉 차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저성장과 인구위기 △인공지능(AI)과 로봇의 확산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세계공급망 개편 등 전환기적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지난달 26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노동부 한국노동연구원과 함께 주최한 ‘전환기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해법, 그리고 사회적 대화’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득 및 자산에서의 양극화와 노동시장 불평등 구조에 미치는 요인은 주로 기술변화 국제무역 산업구조 최저임금 단체교섭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한국의 단체교섭 구조가 ‘고도로 분권화된 교섭체계’에 따른 기업별 교섭과 조합원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고착화시켰다. 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산별·초기업교섭 활성화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화섬식품노조가 주관하고 민주노총, 김주영·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주최했다.

2004년 보건의료산업 산별교섭 상견례 | 1998년 우리나라 최초로 산별노조로 전환한 보건의료노조는 2004년 첫 보건의료산업 산별교섭을 성사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보건의료산업 노사는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이룰 수 없는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보호자 없는 병원’ 운동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9.2 노정합의 등을 이끌었다. 사진 보건의료노조 제공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생산성을 가진 근로자는 기업의 규모와 무관하게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AI) 등 기술발전과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대전환을 맞아 파편화되고 분권화 대응으로는 심화되는 격차를 제어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단위를 넘어선 산업별·초기업교섭 활성화와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교섭 응하지 않는 원청에게 쟁의 허용허자 =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초기업교섭 촉진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발제에서 “우리나라의 단체교섭 구조는 기업별 교섭 중심, 조합원 중심의 고도로 분권화된 교섭체계”라면서 “기존 기업별 교섭체제는 전체 근로자에게 분배되는 부를 근로자 사이에서 적절히 분배·재분배하는 과제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기업 규모에 따라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가 커서 다른 선진국가에 비해 근로자의 분단이 고착화되고 있다.

권 교수는 “대다수 기업별 노동조합은 정규직 조합원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청노동자·비정규직·실업자를 외면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노조의 전반적인 기능 저하뿐 아니라 노조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의 단결이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노조가 자신의 조합원 이외의 근로자, 나아가 국민에게까지 시야를 넓혀 ‘연대에 기초를 두는 단결’로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권 교수는 원청의 사용자성, ‘실질적 지배력의 행사’ 여부를 판단해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교섭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고 봤다. 하청노조와 원청 사이의 노동관계는 원청과 하청 사이의 도급계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원청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단체교섭에 나온다면 원청이 그 하청과의 도급계약을 끊고 새로운 하청과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권 교수는 “산별교섭체제로의 전환이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방안”이라며 “원청이 하청노조의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정당하게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자”고 말했다.

그 방안은 사후적으로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것이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행정적·사법적 판단을 받도록 하는 방식도 있지만, 사전적으로 노동위원회 등의 결정으로 원청과 하청노조의 교섭단위를 지정하고 원청이 교섭단위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 하청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현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쟁의행위가 교섭 중 교섭의제로 국한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는 교섭을 하다 합의가 안되면 쟁의를 하지만, 미국은 교섭에 나오라고 요구를 하는 쟁의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산별교섭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으로 △사업장 단위 법정 근로자대표 도입 및 취업규칙 제도 개선 △사업장 단위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 △노동위원회를 통한 초기업별 교섭단위 결정 도입 △단체협약 효력 확장제도 개선 등을 제시했다.

●프랑스 노조 대표성, ‘근로자 대표성’ =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프랑스 단체교섭 구조를 통해 본 노동자 대표성 논의와 시사점’ 발제에서 “노조가 ‘모든 근로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될 것인지 ‘자기 조합원만 대표하는 조직’이 될 것인지에 따라 대표성이 가지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며 “‘조합원 대표성’을 ‘근로자 대표성’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프랑스는 1946년 헌법 전문에 단결의 자유를 명시하고 이에 따라 복수노조 인정 및 노조 간 동등대우 원칙이 있다. 하지만 노조는 노사관계에서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규범을 형성하기 때문에 대표성을 갖기 위한 일정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 법에 정하는 대표성 기준은 △공화국 가치(자유 평등 박애)의 존중 △자주성 △재정 투명성 △2년 이상의 연혁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거 득표율 △영향력 △조합원 수 등 7가지다. 특히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거 득표율’이 중요하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6가지 항목은 정성평가가 가능하지만 득표율은 0.1이라도 미달하면 대표성이 박탈되기 때문에 핵심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프랑스 노조의 대표성은 ‘근로자’ 대표성”이라며 “교섭단위 내 전체 근로자는 하나의 ‘근로자 공동체’로서 하나의 사단법인처럼 간주되고 노조의 행위는 근로자 공동체의 행위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은 근로자 공동체가 체결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는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모두에게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만인효’가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기업별 협약의 경우에는 해당 기업의 모든 근로자에게, 업종별 협약은 사용자단체에 소속된 기업의 근로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사용자단체 미가맹 기업에 대해선 ‘단체협약 확장제도’를 통해 협약 결과를 확산한다. 단체협약 확장제도는 해당 업종의 노사 일방의 신청이나 노동부 장관이 전국단체교섭위원회 의견을 들은 뒤 직권으로 절차를 개시한다. 다만 사용자단체에서 과반수 반대가 없어야 한다.

●단체교섭 구조에 따라 불평등도 달라져 =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초기업교섭 확산을 위한 노사관계 당사자의 역할’ 발제에서 “그동안 우리는 전체 근로자들의 최저선의 임금 및 노동조건 협약의 확장성 보장이 아니라, 노조가 조직된 정규직 중심의 대기업·공공부문에서 조건을 높이는 데 치중했다”면서 “노조운동 차원에서는 조합원들의 소득수준 향상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으나 전체 노동시장을 보면 또 다른 격차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귀결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임금불평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0위”라며 “노사관계적 해법이 노동시장 불평등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체교섭 구조와 단체협약 적용률이 사회적 불평등의 증감과 의미있는 상관관계가 있다.이 선임연구위원은 “OECD 등 국내외 다수의 연구자료를 보면 단체교섭이 중앙집중화돼 있고 조정력이 높은 국가일수록 불평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집단 간 불평등이 높은 사회일수록 단체교섭 구조 역시 분산되고 분권화되는 경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높은 단체협약 적용률은 해당 산업 내 기업간 임금격차를 줄임으로써 전체적으로 임금불평등을 낮춘다.

2021년 OECD 회원국 36개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십분위율(고소득자 10%와 저소득자 10%의 소득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즉 소득불평등도가 낮아진다. 2019년 기준 단체협약 적용률이 10% 떨어질 때마다 불평등도는 0.34%p씩 증가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에서는 단체교섭을 초기업 단위로 집중화하자는 주장을 노조에서 주로 제기하다 보니, 사용자단체는 노조 혹은 근로자들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단체교섭 구조의 집중화가 노동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단체협약 적용 범위가 노조의 힘 결정 = 이 선임연구위원은 산별·초기업교섭이 거시경제 성과 달성과 불평등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OECD가 2019년 펴낸 협상을 통한 도약 보고서에는 “조정된 분권화와 조율된 단체교섭 시스템은 좋은 고용성과와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해 세계은행에서는 “집단 간의 지속적인 불공정성과 증가하는 불평등은 사회의 응집력을 침식하고 있다”면서 “근로자들 간, 세대 간, 지역 간 긴장이 증가하고 집단 간의 갈등을 키워 사회적 균열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산별·초기업교섭에서는 다수의 사용자에게 협약 적용 의무를 부여할 뿐 아니라 만인효에 따라 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 모두에게 동일한 협약을 적용하지만, 기업별 교섭의 혜택은 해당 기업 내 조합원(근로자)에게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단체교섭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해 “헌법 제32조 3항에서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또 단체협약은 노사가 맺은 사적 계약이지만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정부 역시 단체교섭의 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자단체에 대해서는 “업종별 단체교섭에서 사용자단체 개념이 매우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다”며 영국 노사관계학자인 리차드 하이만의 말을 인용했다. 하이만은 “단체교섭이 산업수준에서 이뤄지면 수량적 교섭의제는 사용자로부터 환영받았다”며 “사용자 간 경쟁에서 인건비를 제외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기업이 동일한 수준의 임금기준을 적용받게 되면 사용자 간 경쟁에서 인건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과도한 인건비 절감보다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노조의 역할에 대해서는 “노조는 조합원들만 대표하지 않는다”며 “근로자의 사회적 경제 이익을 대표하고 국민을 대표해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가하기 때문에 조합원으로 한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적용되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는지가 노조의 힘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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