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신임 배반,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어”

2025-04-04 13:00:14 게재

헌재, 윤 대통령 5가지 소추사유 모두 인정

73일에 걸친 11차례의 변론, 38일간의 숙의 끝에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결론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였다. 헌법재판관들은 전원 일치로 국회가 제기한 탄핵소추 사유 5가지를 모두 인용했다. 헌재는 우선 지난해 12월 3일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부터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계엄 선포의 요건으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병력으로써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와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 및 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로 규정한 헌법과 계엄법을 모두 위반했다는 것이다.

탄핵 인용에 환호하는 시민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을 선고한 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 탄핵에 찬성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윤 대통령측은 탄핵심판 변론에서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고, 거대 야당으로 인해 사실상 국정이 마비돼 계엄 선포 요건이 충족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은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 부당하더라도 헌재의 탄핵심판 피청구인의 법률안 재의요구 등 평상시 권력행사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므로 국가긴급권의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윤 대통령측이 계엄 선포의 이유로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서도 “어떠한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중대한 위기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헌재는 또 국무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 등 비상계엄의 절차적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문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은 계엄사령관 등에게 계엄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계엄 선포에 관한 심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비상계엄 선포문에 부서하지 않았음에도 이 사건 계엄을 선포했고, 그 시행일시, 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하지 않았으며,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지도 않았으므로, 헌법 및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요건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도 중대한 위법행위로 판단했다.

윤 대통령측은 변론에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것은 ‘질서 유지’ 목적이었을 뿐이며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강변했지만 헌재는 윤 대통령으로부터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등 계엄 당시 군 지휘관들의 증언을 인정했다.

문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은 군경을 투입해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이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함으로써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였으므로, 국회에 계엄해제 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을 위반했고, 국회의원의 심의 표결권, 불체포특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특히 “정치적 목적으로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해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다”며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국회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계엄포고령 1호를 작성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중대한 위법 행위로 판단했다. 헌재는 “포고령을 통해 국회 등의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 정당제도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 대의민주주의, 권력분립원칙을 위배했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에 군대를 투입해 압수수색을 한 것에 대해서도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도록 해 영장주의를 위반한 것이자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으로 봤다.

법조인에 대한 위치확인 시도 역시 불법하다고 판단했다. 문 권한대행은 “체포할 목적으로 행해진 위치확인 시도 대상에 얼마 되지 않은 전 대법원장과 전 대법관도 포함돼 있었다”며 “언제든지 행정부에 의한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해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했다”고 했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윤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파면 결정을 내렸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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