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에서 탄핵 판결까지
11회 변론, 증인 16명 … 111일 만에 선고
윤 대통령 직접 출석, 68분간 최종 진술도
역대 최장 … 숙의 길어지며 갖가지 억측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꼬박 111일이 걸렸다. 역대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가운데 최장 기록이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인 12.3 비상계엄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 되다시피 해 사실관계를 다툴 여지가 별로 없고, 위헌·위법성도 명백해 신속히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측됐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63일), 박근혜 전 대통령(91일) 사건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윤 대통령 ‘버티기’에 순탄치 않았던 심판절차 =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부터 순탄치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지난해 12월 4일 곧바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사흘 뒤 본회의에 올렸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불참으로 투표가 성립하지 않아 처리되지 못했다. 이에 야당은 다시 2차 탄핵안을 발의해 같은 달 14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의도 국회를 둘러싸고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압박에 여당 의원들도 투표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일부가 탄핵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헌재가 사건을 접수한 뒤에도 탄핵심판 절차는 한동안 속도를 내지 못했다. 헌재가 정형식 재판관을 주심으로 지정하고 탄핵심판 접수 통지 등 관련 서류를 보냈으나 윤 대통령이 이를 수령하지도 답변을 보내지도 않은 채 버티기에 나선 탓이다. 결국 헌재는 발송송달로 서류가 관저에 도착한 시점에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고 절차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대응에 나선 것은 지난해 12월 27일 1차 변론준비기일 때부터다. 윤 대통령은 당일 오전에서야 윤갑근 변호사 등 3명의 소송위임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헌재에 출석해 국회 의결과 송달절차를 문제 삼으며 사실상 지연 전략을 폈다.
하지만 헌재는 두 차례 변론준비 기일을 끝으로 본격적인 변론에 착수했다. 1월 14일 1차 변론을 시작으로 설 연휴를 제외하고는 주 2회씩 변론을 진행하는 ‘강행군’이었다.
헌재의 ‘6인 체제’에 따른 문제는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인의 임명을 모두 거부했던 한덕수 국무총리와 달리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후보자를 제외한 정계선 조한창 후보자를 1월 1일자로 임명하면서 해소됐다. 헌재가 8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7명 이상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고, 6명 이상 동의해야 탄핵을 인용할 수 있도록 한 헌재법 규정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윤 대통령측은 정계선 재판관에 대해 기피신청을 했으나 헌재는 하루 만에 만장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주 2회 변론 ‘강행군’ = 11회에 걸쳐 진행된 변론에는 총 16명의 증인이 나왔다. 1월 14일 열린 첫 변론은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아 4분 만에 끝났고 이틀 뒤 2차 변론부터 국회측과 윤 대통령측의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됐다.
윤 대통령이 심판정에 직접 출석한 것은 1월 21일 3차 변론 때부터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본인의 탄핵심판에 출석한 윤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를 부인하며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4차 변론에 증인으로 나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직접 신문하기도 했다.
5차 변론에는 이진우 전 육군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형사재판을 이유로 대부분의 증언을 거부한 두 전 사령관과 달리 홍 전 차장은 ‘체포 명단 메모’를 제시하며 윤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인 등 체포지시를 받은 경위 등을 자세히 진술했다. 홍 전 차장은 마지막 증인 신문이 진행된 10차 변론에도 출석해 체포 지시를 한 적 없다는 윤 대통령측과 공방을 벌였다.
6차 변론에는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와 윤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윤 대통령은 곽 전 사령관에게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8차 변론 증인으로 출석한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도 “내부로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조 단장은 헌재가 직권으로 신청한 유일한 증인이었다.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조지호 경찰청장 등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수뇌부는 국회에 경찰을 투입한 경위와 국회의원 체포 지시 여부 등에 관해 진술했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한덕수 국무총리는 비상계엄 직전 열린 국무회의와 관련해 증언했다. 박춘섭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계엄선포 당시가 국가비상사태였는지에 관한 질문을 주로 받았다. 백종욱 전 국가정보원 3차장과 김용빈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이른바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해 증언했다.
40일 넘게 진행된 변론은 2월 25일 양측의 종합변론을 듣고 소추위원인 정청래 국회법제사법위원장과 윤 대통령이 최종 진술하는 것을 끝으로 종료됐다. 윤 대통령은 1시간 8분에 걸친 최후 진술에서도 거대 야당 탓을 하며 “비상계엄은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행사”라고 강변했다.
◆윤 대통령 구속취소 후 엇갈린 전망 =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기소, 형사재판이 함께 이뤄지면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들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두 차례 시도 끝에 1월 15일 체포됐고, 나흘 뒤인 19일 구속됐다. 또 같은 달 26일 검찰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윤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현직 대통령의 체포, 구속, 기소는 모두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달 7일에는 윤 대통령이 청구한 구속취소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다음날 전격 석방됐다. 역시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변론 종결 후 11일, 박 전 대통령은 14일 만에 선고가 내려진 것을 고려하면 한달 넘게 이어진 헌재의 평의 또한 이례적이었다.
과반이 넘는 국민은 윤 대통령 탄핵 인용을 전망했지만 윤 대통령이 풀려나고 헌재의 숙의가 길어지면서 기각이나 각하 결정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윤 대통령 지지자와 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인용과 비인용 구도가 5대3 이어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는 18일까지 선고를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사건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것과 달리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등 검사 3명,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사건을 먼저 선고한 것도 이같은 전망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장고 끝에 헌법 재판관들이 내린 결론은 윤 대통령 파면이었다.
그가 일으킨 비상계엄을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로 본 것이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