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저항에도 관세전쟁 강행
미 각료들 "정책변화 가능성 없어" … 공화당 균열 속 전국 시위 확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모든 무역 상대국에 10%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9일부터는 국가별로 차등화한 추가 관세를 적용하는 상호관세 조치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의 경우처럼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무시한 사실상 거의 모든 수입품에 대한 전방위 무역장벽으로 국제적 반발과 동시에 미국 내부까지 들끓고 있다. 주말 사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가 이를 웅변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은 6일 CBS방송 인터뷰에서 상호관세 시행을 연기할 가능성에 대해 “그럴 일 없다. 몇 주간 유지될 것이며, 이는 대통령의 확고한 방침”이라며 단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각국이 미국을 착취해 왔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글로벌 무역 질서의 근본적 재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부터 중국을 겨냥한 고율 관세 정책을 시행해 왔으며, 이번에는 그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했다.
러트닉 장관은 펭귄이 서식하는 무역 비활성 지역인 허드 맥도널드 제도까지 관세 대상에 포함시킨 배경에 대해 “이 지역을 통한 우회 수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과거 중국이 제3국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 조치는 그러한 허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강경 대응이라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에 지긋지긋함을 느끼고 있으며, 결코 농담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도 NBC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장기적인 경제 기반을 다지고 있다. 경기침체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상호관세 발표 직후 미국 증시가 폭락했지만, 그는 이를 “단기적 반응”으로 일축했다. 또 “레이건 대통령도 불안정을 견디며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날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케빈 해싯은 ABC 방송 인터뷰에서 50개국 이상이 미국 측에 협상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반응은 미국 소비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증거”라며 “30년간의 무역 적자와 낮은 임금 성장률이 값싼 수입품 때문이라면 이제는 공정 무역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 측 낙관론과 달리 정치권 내에서는 불안과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드라이브가 경제 불안을 증폭시키며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내부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경합 지역 의원들은 유권자들로부터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상승에 대한 날 선 질문을 받고 있다. 버지니아주 젠 키건스 하원의원은 유권자들 분노에 “우려를 이해한다”며 방어적 입장을 보였고, 네브래스카 지역 돈 베이컨 의원은 “우리는 무역 분쟁이 아닌 자유무역을 원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친 트럼프 성향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공화, 텍사스)조차 “모든 나라가 미국에 보복하면 참담한 결과가 올 것”이라며 상호관세 유지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제리 모런 의원(캔자스)은 “지역 주민 다수가 관세 정책을 너무 공격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미국 증시 폭락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지지율은 40% 수준까지 떨어졌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현재 민심이 반전되지 않으면 공화당은 내년 선거에서 참패할 수 있다”는 전략가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동시에 미국 전역에서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손을 떼라는 의미의 ‘핸즈오프(Hands Off)’라는 구호 아래 1200건 이상의 집회가 열렸고, 약 50만명이 참여했다. 워싱턴 DC의 워싱턴기념탑 근처에는 수만 명이 운집해 “트럼프·머스크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구조조정, 공공예산 삭감, 러시아에 대한 유화 정책까지 반대하는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시위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유럽 주요 도시인 런던, 파리, 베를린 등에서도 동시다발적 집회가 열렸다. 이 시위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연방정부 축소 조치를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