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락된 정치 불확실성…조기 추경 탄력 받을까

2025-04-07 13:00:02 게재

정부 10조 ‘필수 추경’ … 증액 가능성도

경기부진에 소매판매 등 내수지표 내림세

트럼프 관세전쟁, 통상 대응·지원 불가피

전문가 “민생 경제 살리기, 추경 서둘러야”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단락됐다. 여기에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파면 후 여야 모두 조기 대선 국면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표심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민생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는 정당(후보)’로 각인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조단위 예비비 집행이 예상되는 신속한 산불 피해 복구지원을 위해서도 추경이 불가피하다.

다만 조기대선체제로 접어든 여야간 갈등이 격화되면 추경 시기가 지체될 가능성도 있다. 또 추경예산 사용처와 규모를 놓고 소모적 정쟁에 시간만 허비하다 ‘대선정국’에 밀려 불발될 수도 있다.

앞서 정부는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이 이달 중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와 긴밀히 소통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국정협의회 열릴까 = 7일 기획재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조기 대선일이 확정되면 민생 현안과 추경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정 국정협의회가 가동될 전망이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4일 헌재의 선고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신속한 추경과 당면 과제를 빈틈없이 챙기는 일이 중요하다”며 “그래야 새로 출범할 정부가 빠르게 연착륙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 의장은 여·야·정 국정협의회를 재가동해 정부가 발표한 10조원 규모 ‘필수 추경’을 신속히 협의해 4월 내 처리를 당부했다.

여야 모두 일단은 ‘추경 필요성’에는 긍정 기류가 강하다. 더구나 대선국면에 진입하면 ‘민생 살리기’를 위해서라도 추경을 반대할 명분은 약해진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현실화하면서 정부 지원이 시급해진 점도 추경 처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에) 적기를 놓친 추경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겠다”면서 “정부는 실효성 있는 추경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더 기다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측도 “산불 추경을 비롯해 야당과 논의할 수 있다”며 “4월 임시국회에서 비쟁점 법안도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여·야·정 국정협의회가 가동되면 추경안 처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불 피해 지원과 함께 미국의 상호관세 대응, 내수 진작 등을 위해 추경안을 더 지체할 수 없어 이달 중 국회 처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헌재의 윤석열 파면 선고 후 경제관계장관간담회를 열고 “10조원 규모 필수 추경의 4월 내 국회 통과가 매우 긴요하다”며 거듭 추경논의를 재촉했다.

다만 추경 논의가 국정협의회가 아닌 정당간 정책협의회에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에서는 윤석열 파면으로 여야 구분의 의미가 없어진 만큼 정당간 정책협의회를 통해 추경을 논의하자는 구상이 나오고 있어서다. 민주당에서는 국무총리 훈령 ‘당정협의업무 운영규정’을 근거로 정당정책협의회를 추경 논의 기구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사실상 여당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운영규정 제7조2는 여당이 없을 경우 행정부와 각 정당 사이에 정당정책협의회를 두고 현안을 논의하도록 규정한다.

◆‘10조원+α’에 여야 공감대 = 추경 규모는 정부안보다 다소 커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도 여야 협의 전제로 추경의 증액 가능성도 내비쳤다. 기재부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해 민생 분야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추경안 규모가 10조원에서 더 증액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윤석열 파면 후 정치적 불확실성은 다소 걷혔지만 내수 침체 등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신속한 추경 등 재정의 역할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35조원, 국민의힘은 15조원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 국회에서 15조~20조원을 바람직한 추경 규모라고 언급했다. 이 때문에 여야 협의 과정에서 추경 규모(정부안 10조)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여야가 조기추경에 공감하고 있는 배경 중 핵심은 내수부진이다.

최근 내수 지표는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1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 대비 0.6%,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0.8% 각각 감소했다. 탄핵 정국에 이은 윤석열 파면으로 내수는 더 둔화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당시 2016년 10월부터 소비 지표는 낮은 증가세를 보이다 이듬해 3월 파면 결정 후 증가세가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민생 추경 서둘러야” =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관세 폭탄도 어디로 튈지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은 최근 한국에 25%의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고,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 품목별 수입 관세도 시행 중이다. 반도체·의약품 으로 관세 대상 품목을 확대하는 등 미국발 통상 파고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국내 증시와 환율은 널뛰기 중이고, 미국과 중국 간 ‘관세전쟁’이 우리 경제에 미칠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5일 JP모건이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당초 1.3%에서 -0.3% 역성장으로 예상했는데, 미국 경기 하락은 우리 수출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 모두 합심해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생 살리기 추경을 서둘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선 국면으로 가면 추경도 더 빨리 될 수 있고, 여야정 협의체도 더 유연하고 전향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며 “통상과 내수 진작을 위해 조기 추경을 하려면 정부가 제안한 10조원은 적고, 산불 피해 복구 예산을 제외하고도 최소 15조원 이상이 돼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한국이 윤 대통령 파면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로 추경 편성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건의 박석길 이코노미스트는 “추경 예산의 규모와 시기는 협상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산불 대응과 기존의 본 예산 정상화를 위해 비교적 소폭의 추경 예산을 편성하고 대선 이후 대내외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대규모 추경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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