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BRL 작성 프로그램’ 기업 불만 폭주…중소형 상장사 공시 완화·유예

2025-04-08 13:00:02 게재

금감원, 자산 2천억 미만 상장사 XBRL 주석공시 유예

기업 실무자들 “어렵고 불편, 회계법인에 맡겨도 틀려”

올해 498개사 중 61개사 정정공시, “확대시 아비규환”

재무데이터(XBRL) 공시(재무제표 본문+주석) 체계가 올해부터 상장법인 전체에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중소형사들에 대해서는 시행을 1~2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XBRL 재무공시를 의무화한 상장사(자산 5000억원 이상)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XBRL 작성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 폭주했고 중소형 상장사로 확대할 경우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혼란을 막기 위해 중소형 상장사 XBRL 주석 재무공시 연착륙 방안을 마련했다.

8일 금감원은 “자산 5000억 미만 상장사를 3개 그룹으로 세분화해 XBRL 주석 재무공시 신규 제출 대상을 연도별로 균등하게 배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2025년 사업보고서 ‘XBRL 주석 재무공시 신규 제출 상장사’는 자산 5000억원 미만 약 1800여곳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금감원은 자산 2000억원 이상 5000억원 미만(약 550여개사)에 대해서만 예정대로 신규 제출을 하도록 했고, 자산 1000억원 이상 2000억원 미만(약 500여개사) 상장사는 1년간 유예(2026년 사업보고서부터)하기로 했다. 자산 1000억원 미만(약 750여개사) 상장사는 2년간 유예(2027년 사업보고서부터)하기로 했다.

또 자산 5000억원 이상 상장사는 분기별(연 4회)로 XBRL 주석 상세 공시를 해야하지만, 5000억원 미만 상장사는 XBRL 주석 상세 공시를 반기별(연 2회)로 완화했다.

◆금융당국이 작성 프로그램 제공 “전 세계 유일” = XBRL은 기업의 재무데이터를 디지털 형태로 표준화해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든 국제 표준 언어로 엑셀 등 데이터 분석 도구를 활용해 쉽게 분석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기업 재무데이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입했으며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도 재무제표 본문 및 주석을 XBRL 데이터로 개방하고 있다.

2023년 금감원은 공시 작성 체계를 XBRL로 전환 하면서 “XBRL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더라도 제출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XBRL 재무제표를 작성할 수 있는 전용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한다”고 밝혔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상장사의 경우 XBRL 기술 및 XBRL 상용프로그램의 복잡성 등으로 회계법인 등을 통해 XBRL 재무제표를 작성·제출하고 있다.

금감원은 “전 세계적으로 감독당국에서 XBRL 작성프로그램을 개발·제공하는 유일한 사례”라고 자신했다.

XBRL 재무제표에 영문계정과목명이 포함돼 있어 ‘국문→영문’ 자동변환이 가능한 만큼, 외국인 투자자가 후행자료(IR보고서 등)에 의존하던 영문 재무제표 및 주석을 사업보고서 공시 즉시 영문으로 확인할 수 있는 등 국제 신뢰도 제고도 기대했다.

전체적인 방향성과 기업들의 직접 작성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은 좋은 취지였지만 제도 시행 이후 기업 실무자들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어렵고, 느리고, 불편” … 회계법인에 외주 =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회계·세무·재무)에는 최근까지 XBRL 작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XBRL이 최악인 이유’라는 글에서는 “너무 불편하다, 표 복사 붙여넣기도 안 되고 한땀 한땀 새로 만들어야 한다”며 “행 열 축 구성요소 등 직관적이지 않고 복잡하고 숫자, 이름 바꾸면 이게 어디까지 또 바뀔 건지 리스크 감당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올해 자산 5000억원 미만 상장사로 대상 기업이 확대되는 것을 앞두고는 “아비규환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여론이 끓기 시작하면 어떤 식으로든 손을 볼 것”이라는 내용의 글도 올라와 있다. 2주 전부터는 금융당국이 시행을 연기할 것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XBRL 주석 외주없이 가능한가”라는 문의글에는 “회사에 투입 가능한 인력과 역량이 있으면 불가능하진 않지만 회사 자체 작성을 권장하던 금감원도 회사들이 하도 많이 틀려오니 회계법인 지원 권고로 입장을 바꿨다고 들었다”며 “처음에는 외주 도움 받는 걸 추천한다. 금감원이 잘못(어렵게, 느리게, 불편하게, 불친절하게) 만든 정책에 회사가 피말릴 필요 없을 거 같다”는 답글이 달렸다.

금감원은 “금년도 XBRL 주석 신규 제출 대상 337개사 중 285개사(84.6%)는 회계법인에 작성을 위탁했으며, 52개사(15.4%)는 회사가 직접 작성·제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계법인에 맡겨도 오류가 많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컨설팅 받았는데 회계사들도 엄청 틀리더라”, “회계법인도 진짜 엄청 틀림”, “회계법인에 맡겨도 숫자 입력이랑 시인성이 난해해서 엄청 틀리더라구요. 자격사가 새벽까지 매달려도 이런데 일반 직원들이 어떻게 퍼펙트하게 하냐고” 등 불신이 팽배했다.

◆무더기 정정공시, 금감원 “지원 강화, 제작기 성능 개선” = 지난달 13일 기아는 무더기 정정공시를 냈다. 정정 항목만 30개가 넘었다. 금감원은 “전체 498개사 중 61개사(12.2%)는 ‘XBRL 재무제표 본문·주석 작성 가이드‘ 미준수 또는 기재 사항 오류 등으로 정정 공시 완료했다”고 밝혔다. 사업보고서 정정비율은 지난해 27%에서 12.2%로 줄었다.

금감원은 “금감원이 회계법인 및 제출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 결과, 상장사의 자체 작성 능력이 제고되고, 회계법인의 자문 품질이 향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실무자들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이 필요하겠지만,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프로그램을 완벽히 숙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XBRL 시범 제출 및 피드백, XBRL 작성 가이드 교육 등을 지속 제공하기로 했다. XBRL 주석을 작성할 수 있도록 실무 교육을 실시하고, XBRL 작성프로그램 성능도 개선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유관기관 등과 맞춤형 실무교육 제공 등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상장사 등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며 “또한, XBRL 재무제표 작성기(IFRS)의 성능을 강화하고 이용자 편의사항을 추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기능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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