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르는 ‘경제 이상음’… 재소환된 ‘1997년 IMF 대선’
1997년 대선 앞 외환위기 … 김대중 후보 ‘준비된 리더십’ 부각
미국발 ‘관세 전쟁’에 시장 혼란 … “외환위기보다 심각” 우려
구 여권, ‘책임론’ 부담 … 차기주자들 “내가 위기 극복 적임자”
미국발 ‘관세 전쟁’이 현실화되면서 대한민국 경제에 잇단 이상음이 들리는 가운데 6.3 대선이 두 달 뒤로 다가왔다. 1997년 15대 대선(12월 18일)을 앞두고 외환위기가 터진 것과 ‘판박이’ 상황이다. 유권자들이 6.3 대선 과정에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준비된 리더십’에 더 점수를 주고, 후보들도 표심을 겨냥한 ‘경제 캠페인’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1997년 15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11월 21일 김영삼정부는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개하고 12월 3일 IMF와의 협상을 최종 발표했다. 사실상의 국가 부도로 불린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대선에 출마한 여야 주자들은 “위기 극복에는 내가 적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공천을 받은 이회창 후보는 대선 포스터에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란 구호를 넣었다. 이 후보는 가는 곳마다 “경제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제1야당 김대중 후보는 포스터에 ‘경제를 살립시다’란 구호만 강조했다. 김 후보는 여당과 이 후보를 향해 ‘경제 파탄 책임론’을 제기하며 “경륜과 위기 관리능력을 겸비한 나를 찍어 달라”고 호소했다. 대선 직전에는 거물 투자자 조지 소로스와 가수 마이클 잭슨, 미키 캔터 전 미국 상무장관과의 화상회의를 통해 ‘준비된 리더십’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결국 초유의 ‘IMF 대선’에서 김 후보가 승리했다. 그가 내세운 ‘준비된 리더십’ 이미지가 유권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2025년 6.3 대선을 앞두고 ‘경제 이상음’이 잇따른다. “IMF 때보다 심각하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관세 전쟁’이 현실화되자 한국 주식시장은 급락세를 기록했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경제의 체질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0년대 초반 5% 안팎이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1%대까지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0%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시적 위기가 아닌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6.3 대선이 치러지면서 유권자들의 요구는 ‘경제 위기 극복’에 집중될 것이란 전망이다. 1997년 ‘IMF’보다 심각하다고 평가되는 최근 위기를 극복할 비전을 누가 내놓을 지 주목한다는 것이다.
일단 구 여권(국민의힘)은 불리한 형국이다. 윤석열정권 3년 동안 경제 위기를 대비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데다, ‘12.3 불법계엄’을 저질러 경제 위기를 돌파할 골든타임을 허비했다는 비판이 거세기 때문이다. 구 여권은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6.3 대선을 겨냥한 ‘경제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다시 성장이다’란 제목의 책을, 홍준표 대구시장은 ‘제7공화국 선진대국 시대를 연다’란 제목의 책을 통해 본인이 경제 위기 극복의 적임자임을 강조한다는 구상이다. 안철수 의원은 “시대 전환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는 각오다. 경제학박사인 유승민 전 의원은 7일 “이번 대선의 화두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며 “준비된 경제 대통령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야권은 6.3 대선을 겨냥한 ‘경제 캠페인’을 통해 ‘준비된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7일 미국발 ‘관세 전쟁’ 대응을 위한 ‘국회 통상특위’ 구성을 재차 제안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0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되고, 삼성이 잘 살아야 삼성에 투자한 사람도 잘 산다”며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긴 한데 결국 우리 역량, 의지로 잘 이겨낼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제전문가’ 이미지 부각을 고심 중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