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만드는 축제 따로 있다

2025-04-10 13:00:02 게재

성동구 ‘응봉산 개나리축제’

어린이도 나서 기념품 선물

“저녁이면 차를 끌고 오는 연인들이 많아요. 사진찍는 분들하고. 그런데 골목이 엄청 좁아요. 금세 차들이 뒤엉키고 난리가 납니다.”

서울 성동구 응봉동 주민들이 나선 이유다. 박 일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자치회 위원들과 통장들이 3시간씩 번갈아가면서 교통통제를 하고 인근 공영주차장을 안내했다”며 “축제 때문에 불편하다고 구청에 민원을 넣는 주민들이 많은데 올해는 조용히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정원오 구청장이 개나리축제에서 꽃모양 머리핀을 방문객들에게 선물하는 응봉어린이집 아동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 성동구 제공

10일 성동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끝난 ‘2025 응봉산 개나리축제’에서 인근 주민들이 ‘빛나는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구에서 주관하는 잔치지만 ‘축제지원’을 맡은 주민들이 준비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북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직후 진행했는데 안전사고 없이 끝났고 피해지역 주민들을 위한 성금까지 전해 의미를 더한다.

응봉산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개나리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 전체를 노랗게 뒤덮은 개나리와 함께 한강 중랑천 서울숲 등 탁트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노을과 야경 명소로도 이름 나 있다. 성동구는 개나리 개화시기에 맞춰 주민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특히 오래도록 봄을 만끽할 수 있도록 5일간 ‘개나리 주간’을 운영했다. 지난달 경북 등지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떠들썩한 꽃놀이 대신 이재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차분한 축제로 방향을 틀었다. 개나리 묘목 심기, 어린이와 주민들이 참여하는 백일장과 그림 그리기, 개나리 포토존 등이 큰 호응을 얻었다.

지원에 나선 주민들은 축제 전 동주민센터 공무원들과 함께 환경정비와 특별순찰부터 했다. 응봉산 진입로와 공원 주변을 청소하면서 도로 점자블록이나 경계석 등 위험요소가 없는지 살폈다. 불법현수막과 도로 노면표시, 가로수에 생긴 벌집 등도 주민들 눈을 피하지 못했다. 행사장 주변 안전과 치안상태도 점검했다.

응봉동 주민들과 동주민센터 공무원들이 개나리축제에 앞서 대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 성동구 제공

주민 14명은 ‘응봉산 골목지킴이’를 꾸리고 2명씩 조를 이뤄 야간 교통안전을 담당했다. 산 아래쪽부터 차량통행을 차단하고 가까운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도록 안내했다. 이 과정에서 길에 쓰러진 취약계층 주민을 발견해 소방과 경찰에 연계하기도 했다.

주민자치회 통장협의회 새마을부녀회가 산 아래 동주민센터 공유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해 정상 인근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수익금 일부는 산불피해 지역을 위한 성금에 보탰고 연말 ‘따뜻한 겨울나기’에도 기부할 예정이다. 박춘희 통장협의회장은 “동주민센터 직원들에 남편들까지 동원해서 날랐는데 2배 이상 보람으로 돌아왔다”며 “직장에 휴가를 내거나 링거를 맞은 통장도 있는데 응봉동과 성동구를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모두 행복해 했다”고 전했다.

응봉동 주민들이 축제 현장에서 먹거리를 판매하고 수익금 일부를 산불피해 지역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했다. 정원오 구청장이 주민들 응원차 방문했다. 사진 성동구 제공

동네 어린이집과 협업도 눈길을 끈다. 응봉어린이집 아이들이 호랑나비 옷차림에 개나리꽃 장식 모자를 쓰고 축제장에 등장했다. 교사와 학부모까지 동참해 방문객들에게 개나리꽃 모양 머리핀을 나눠줬다. 아이들은 이후에도 다양한 지역 행사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예정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공무원부터 주민까지 모두가 한마음이 돼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방문객들이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었다”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기반해 지속가능한 행사문화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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