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 62년 만에 ‘연판장’ 도는 경호처

2025-04-10 13:00:02 게재

대통령 파면에도 버티는 지휘부 겨냥 … 김성훈 차장 등 강경파, 반대파 보복성 징계 나서

대통령경호처 소속 경호관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도 직을 유지하고 있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처장 직무대행)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반발해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 이번 ‘연판장 사태’는 경호처 창설 62년 만에 발생한 초유의 사건이다.

이런 가운데 김 차장 등 강경파가 장악하고 있는 경호처가 윤 전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무력으로 저지하라는 지시에 항명했던 간부 A씨에 대한 파면을 추진하고 있어 보복 징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10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호처 일부 직원들이 나서 ‘경호차장 등의 권한행사 중지 청원의 건’이라는 연판장에 서명을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성훈 경호처 차장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경호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그 옆으로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오른쪽)이 윤 대통령을 경호하며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연판장에는 “지금의 경호처는 사병 집단이란 조롱 섞인 오명과 함께 조직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며 “원인 제공자인 김성훈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경호처를 사조직화했으며, 직권 남용 등 갖은 불법 행위를 자행해 조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 차장은 앞서 지난 1월 한 방송 인터뷰에서 “경호처는 사병 집단이 맞고 오로지 대통령만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정부기관”이라고 말했다.

이번 내부 반발은 김 차장이 윤 전 대통령 파면 사흘 뒤인 지난 7일 간부급 회의인 ‘현안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본격화됐다.

김 차장은 이날 “윤 전 대통령을 따라 거취를 정리할 생각이 없으며 안정적으로 전직부(전직 대통령 경호부) 편성, 차기 대통령 경호팀 편성 등 조직 관리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기 정부 출범 때까지 ‘강경파’들이 계속 남아 경호처 인사와 운영 등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경호처 내부에서는 김 차장이 계속 처장 직무대행직을 수행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많았다. 경호처는 관례적으로 소속 직원에 대해 수사기관이 수사 개시 통보를 해오면 직위 해제를 했다. 하지만 김 차장과 이 본부장 등은 1월 초 기관 통보를 받고도 3개월 넘게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일부 직원들은 김 차장이 경찰 조사에서 ‘체포 영장 집행 저지에 불참한 직원 등에게 인사에 불이익을 준 적이 없고, 비화폰 서버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과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하고 있다.

연판장 서명에는 경호처 중간간부들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경호처 관계자는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내부 일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경호처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무력으로 저지하라는 지시에 반대했던 간부 A씨의 해임 징계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제청했다. 경호처 안팎에서는 새 정권 출범 전에 보복 징계를 서두르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징계가 제청된 A씨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 전인 지난 1월 12일 간부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또다시 물리력을 동원해 막으라는 김 차장의 지시에 ‘법원이 발부한 영장 집행을 막는 것은 위법 소지가 크다’고 반대했던 인물이다.

김 차장은 이날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에 비밀을 유출했다’며 그를 대기발령 조처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이후 경호처는 지난달 13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 징계를 의결했다. 해임은 최고 수위 징계인 파면 아래 단계로 공무원을 강제로 퇴직시키는 중징계 처분이다.

A씨는 ‘1차 체포영장 집행 불발 뒤 경찰과 경호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일 뿐’이라고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경호처 관계자는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 또 윤 전 대통령 조사에 앞서 김 차장 등 경호처 강경파들에 대한 추가 조사나 비화폰 서버 확보를 위한 추가 압수수색 가능성도 제기된다.

장세풍·김형선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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