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다가오자 은행장들 줄 세우는 정치권
국민의힘, 민주당 이어 주요 은행장들과 만나
명분은 “민생경제 안정” … 내심은 생색내기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주요 시중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민주당이 지난 1월 비슷한 모임을 가질 때는 선거운동이라며 비판하더니 정작 선거철이 다가오자 비슷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겉으로는 민생경제 지원을 위한 은행의 역할을 당부하는 자리라지만 내심은 은행장 앞세워 생색내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윤한홍 의원을 비롯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9일 오전 서울 명동에 있는 은행회관에서 이환주 KB국민은행장 등 8명의 시중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민생경제 안정과 은행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현장간담회’의 성격을 가진 이날 만남은 국민의힘이 제안하고 주도해 이뤄졌다.
윤한홍 정무위원장은 이날 “미국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 되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의 어려움이 크고 국민의 삶에 여파를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어떻게 지원해 나갈지 고민하고, 은행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견도 경청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은행장을 대표해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경제의 방파제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며 “국회도 은행산업 관련 제도개선에 함께 고민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 1월 국회 정무위 소속 자당 의원들을 데리고 와 같은 장소에서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도 서민금융지원 등을 위한 명목으로 민주당이 제안하고 주도해 이뤄진 자리다. 참석한 은행장들도 대부분 같다.
국민의힘은 당시 이 대표 등의 행보에 대해 관치금융이고 선거운동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지난 1월 ‘내란국조특위’ 청문회에 참석해 “금융은 우리 산업의 혈맥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동시에 자율성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면서 “정치권 고위직이 금융기관을 직접 만나 요청하는 것은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대표가 시중 은행장을 불러 만난 것은 오만”이라며 “야당 주도로 옛날 관치금융으로 회귀할 수 있는 문제라 본다”고 한 질문에 한 대행이 답변한 것이다. 그랬던 국민의힘도 결국 조기대선을 앞두고 똑같은 행보를 보인 셈이다.
여야 정치권의 이런 행보에 금융권 시선은 곱지 않다. 민생경제(국민의힘)와 서민금융(민주당)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내심은 이들이 은행권 팔을 비틀어 생색을 내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은행장들과 정치권이 만나서 현안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금융위와 금감원 등 감독당국의 강력한 규제를 받는 은행권 입장에서는 이들 기관을 소관부서로 두고 있는 정무위원들의 제안을 거부하기 힘든 처지다.
한 시중은행장은 “어휴, 뭐 오라니까 나가는거지”라며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은행장들 입장에서 국회 정무위원은 이른바 ‘갑중의 갑’이다. 평소에도 정무위원들이 보자면 만사를 제쳐두고 나가는 입장이어서 최근 간담회도 정치권 일정과 각당의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둔 자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채용비리 사건 등을 보면 은행에 가장 많은 청탁을 하는 곳이 정치권 아니냐”며 “조기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입장에서 은행권은 가장 생색내기 쉬운 집단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이 은행장들과 만날 때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나는 장면이 기념사진 찍을 때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정치인들이 앞줄에 서고 은행장은 뒷줄에서 이른바 ‘병풍’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홍보담당자는 “언론사 등이 주최하는 수많은 행사를 가봐도 항상 정치인은 앞줄 가운데를 차지하고 은행장들은 사진찍기용이라는 느낌”이라며 “어차피 이번 모임도 불려가듯이 나간 것 아니냐”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