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면충돌 직전 ‘숨고르기’
트럼프 “중국과 합의 원해” … 중국, 보복 관세 대신 할리우드 제재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70여 개국에 대해 상호관세 적용을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을 비롯한 국가들은 25%에 달했던 상호관세율이 10%의 기본관세로 낮춰졌다. 중국만 예외였다. 기존 104%에 21%포인트를 추가해 총 125%의 대중 관세를 부과했고, 여기에 펜타닐 성분 원료에 대한 20% 별도 관세를 더하면 누적 관세율은 145%에 이른다.
중국은 즉각적으로 미국산 수입품에 84%의 보복관세로 맞대응했지만, 추가 조치는 관세가 아닌 문화 산업을 겨냥했다. 중국 국가영화국은 “미국 영화 수입을 적절히 줄일 것”이라고 밝히며, 자국 관객의 호감도 저하와 시장 수요를 이유로 들었다.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문화산업, 특히 할리우드를 압박하는 조치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손해 없이 눈에 띄게 보복하는 방법”이라며 이 조치가 중국의 전략적 대응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내 할리우드 영화 비중은 이미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중국 내에서 개봉한 미국 영화는 93편이었고, 최고 흥행작 중 하나였던 ‘어벤져스: 엔드게임’ 외엔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영화 수입 제한을 보복 카드로 택해도 자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크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오랜 친구”라며 존중을 표하면서 “양국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끝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중국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며 협상 가능성의 문을 열어뒀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관세 전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유예 국가인 유럽연합(EU)에 대해 “매우 현명했다”고 평가하면서 협상에 나서는 국가들과는 관세 외에도 방위비, 에너지, 산업 전반을 포함한 이른바 ‘원스톱 쇼핑’ 방식의 패키지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일본과의 방위조약에 대해서도 “미국만 방어 의무가 있고,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불균형을 지적했다.
‘90일 유예’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지만 협상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유예 이전의 관세율로 복귀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상대국에 시간은 주되, 실질적 양보와 합의 없이는 관세 부활이 불가피하다는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관세 조치의 궁극적인 목적이 연방 재정적자 감축과 감세에 대비한 세수 확보라고 밝혔다. 그는 “과도기적인 비용과 문제가 따르겠지만 결국에는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라며 관세 정책의 긍정적 효과를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가 시작한 관세폭탄에 중국이 보복관세로 맞대응하면서 양측 모두 물러서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았지만 더 이상은 양측 모두에 너무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셈이다.
따라서 서로 치명타를 피하며 협상의 여지를 탐색하는 양상이다. 정면충돌을 피한 이번 ‘숨 고르기’가 협상 테이블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다른 파국의 서막이 될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90일 유예기간을 통해 잠시 여유를 찾은 한국을 비롯한 주요 무역국들은 미중의 갈등과 충돌이 어디로 튈지,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