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덮친 ‘관세풍랑’…“대미 관세협상 서두를수록 더 큰 피해”

2025-04-14 13:00:01 게재

정치리스크 일단락되자 유례없는 대외리스크 … 내수 진작 못하면 '0%대 성장' 현실화 우려↑

윤석열 파면으로 12·3비상계엄 이후 넉 달간 한국경제를 짓눌렀던 정치 리스크가 일단락됐지만 유례 없는 대외리스크가 몰아치고 있다. 상호관세가 90일간 유예되면서 최소한 7월 초순까지 여유시간은 확보됐지만, 우리나라로서는 6·3대선 이후 1개월이 실질적인 골든타임이다.

관세가 미국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도 상당한 부메랑으로 작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는 만큼 임시적인 권한대행 체제에서 조급하게 협상을 시도하기보다는 글로벌 관세전쟁의 전개 양상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이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대외 불확실성 전면에 = 익명을 요청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14일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세계 교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결국 미국의 관세협상력은 시간이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마침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과도기 정부체제를 갖고 있는 점을 십분 활용해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서두르면 피해만 커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다른 관계자도 “미국에게는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정치특성상 관세협상과 관련된 최종 결정은 6월 대선 뒤 국민들로부터 선출될 차기 대통령이 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계속 상기시키며 유연하게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경제가 처한 대외불확실성의 파고는 유례가 없는 수준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글로벌 무역갈등 관련 국제금융시장 동향’을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상황에 대한 해외시각’이라는 제목으로 내부 리스크에 초점을 맞췄지만, 대통령 탄핵 뒤 대외불확실성이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됐다고 판단한 셈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도 지난주 보고서에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한국의 정치리스크가 완화됐다고 긍정 평가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종전의 AA-로 유지하는 지난 2월 판단에서도 탄핵안 인용이 전제로 깔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피치의 예상과 달리, 탄핵안이 기각 또는 각하됐다면 신용등급이 강등될 뻔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홍경식 국제금융센터 부원장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났으니 정치 관련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라며 “내수 부문이 계속 좋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에서 ’외환‘의 리스크가 너무 심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력 키우는 관세 태풍 = 이런 정치리스크 해소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대외악재의 충격이 가파르게 증폭하고 있다.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시장에 안도감을 주기보다는 극한의 불확실성을 가져다줬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 따라서는 언제든 되살아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는 ‘슈퍼 언노운’(unknown), ‘초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상호관세와 별개로, 10% 기본관세와 중국산 수입품 추가관세, 철강·자동차 등 부문별 관세까지 고려하면 이미 관세전쟁은 전면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트럼프 1기와 달리, 중국이 정면대결의 자세를 취하면서 미·중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로 잇따라 0%대 전망치를 내놓는 것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JP모건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9%에서 0.7%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영국의 리서치 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E)는 0.9% 성장 전망치를 제시했다.

◆시험대 오른 ‘권한대행 체제’ = 정책당국도 통제불능의 대외 불확실성 속에 고차의 시험대에 올라섰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경제안보전략 TF(태스크포스)를 중심으로, 최상목 경제부총리 중심의 대외경제장관회의와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 기재 1차관 주재 ‘통상현안 관련 범정부 국내대응 TF’ 등이 동시에 가동되고 있다.

미국 관세에 따른 수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조원 규모의 수출금융도 제공한다.

정부로서는 수출 부문에서 가용할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하는 모습이지만, 상대적으로 내수 지원책은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가 추진하는 10조 필수추경도 내수진작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중국과 일본이 관세악재에 대응해 공격적인 내수 부양을 이어가는 것과도 대비된다.

일본 여권에서는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3만엔(약 3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일부 의원은 고물가를 고려해 10만엔(약 100만원)을 주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중국은 작년 하반기부터 잇달아 내수 부양책을 발표했으며, 미국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서 추가 부양책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일단 산불피해 복구지원과 통상대응 등 당장 급한 항목으로 추경안을 편성하고 있다”면서 “국회 심의과정에서 내수진작을 위한 추경 확대가 합의된다면 (기재부가)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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