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제” 뒤집은 트럼프, 혼란 자초

2025-04-14 13:00:44 게재

발표 이틀 만에 철회 취지 부정 … 중국 “잘못된 정책, 전면 철회하라” 반발

14일 일출 시간에 한 여성이 황푸강변 와이탄 산책로에서 상하이의 금융 지구를 배경으로 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일부 관세 부과에 대한 90일 유예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라도 관세에서 ‘면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혼선이 글로벌 산업계와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반도체와 스마트폰, 평면 디스플레이 모듈 등 주요 전자제품을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해 관세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이는 면제가 아니라, 다른 관세 범주로 이동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기존 강경 기조를 유지할 뜻을 밝혔다.

혼선의 출발점은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발표한 ‘상호관세 제외 품목 코드(HTSUS)’ 목록이다. 여기에는 반도체 제조 장비, 스마트폰,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집적회로(HTS 8542) 등이 포함됐다.

발표 직후 언론들은 해당 품목들이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125%의 상호관세와 한국 등 다른 국가에 적용 예정이던 10~25% 관세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이는 예외 조치가 아니며, 기존 20% 펜타닐 관세는 여전히 유효하다. 단지 다른 관세 카테고리로 이동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반도체와 전자제품 공급망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안보 관세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관세 부과 강행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이날 ABC 뉴스 인터뷰에서 “이들 전자제품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전략 자산이며, 품목별 관세로 규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는 반드시 미국에서 생산돼야 하며, 현재 대부분의 생산은 대만에서 조립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잇따른 번복조치에 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기술 업계와 경제 전문가들은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 기업의 공급망 전략과 투자 계획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딘 베이커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관세 정책은 산업 전략이 아닌 정치적 쇼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웨드부시 증권의 수석 애널리스트 댄 아이브스는 “백악관에서 나오는 상반된 메시지들이 기업과 투자자에게 큰 혼란을 안기고 있으며, 공급망과 수요 예측까지 마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은 잘못된 관세 정책을 전면 철회하고 상호 존중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미국이 지난 4월 초 자국산 제품에 54%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이번에 145%까지 인상한 점을 문제 삼으며 보복 차원에서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34%에서 125%까지 끌어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미국을 최악으로 대우하는 중국을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고 반박하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그는 또 “미국은 자국 내 생산 기반을 회복해야 하며, 외국에 경제적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상호관세 면제 발표는 실제로는 ‘정책 전환’이 아니라 ‘전략적 전환’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품목별 관세는 계속 유지될 예정이며, 반도체 등 국가안보 관련 핵심 품목에 대한 수입 규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비판도 거세다.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은 혼돈 그 자체”라며 “트럼프가 관세 정책을 ‘빨간불 파란불 놀이’처럼 다루는 동안 투자자들은 미국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 부커(뉴저지) 상원의원도 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신뢰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으며, 세계는 더 이상 미국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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