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6일 미국과 첫 양자 관세협상 시작

2025-04-15 13:00:39 게재

일, 최대 수출품목 자동차·부품 등 관세율 낮추기 사활

미, 환율·비관세 장벽 등 내세우며 협상 주도권 노릴 듯

미국과 일본이 이번주 미국 워싱턴에서 정부 차원의 첫 양자간 관세협상을 시작한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 시행을 90일 연장한 가운데 사실상 처음 가지는 양자간 협상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일본은 자동차 등 자국의 주력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일본 정부, 관세와 환율 분리대응 방침 = NHK 등 일본 언론은 14일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정재생담당 장관을 대표로 한 정부협상단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만난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협상과정에서 일본 기업의 대 미국 투자규모와 향후 계획 등을 설명하면서 미국 경제와 고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 관세협상의 일본측 대표를 맡은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정재생담당 장관이 13일 협상과 관련한 기자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일본 민방 TBS 유튜브채널

NHK는 14일 “정부는 일본이 미국 경제에 공헌한 점을 설명하고, 미국측의 교섭태도 등을 보고 추가 대응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13일 “미국의 제조업을 강하게 하려면 관세 조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설득하면서 교섭이 이뤄지도록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측 최대 관심사는 단연 자동차 관련 관세율을 낮추는 것이다. 미국이 새롭게 부과한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25%)는 연간 140만대 가량 일본에서 생산한 차량을 수출하는 도요타 등 자동차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일본 재무성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해 대미 수출 가운데 완성차 수출액은 약 6조엔(약 60조원)으로 전체의 28.3%를 차지한다. 여기에 자동차부품 수출액(1.2조엔)도 대미 수출에서 5.8%를 차지한다. 자동차 관련 수출 금액만 7조2000억엔으로 일본 전체 명목GDP(약 610조엔)의 11.8%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대미 수출에서 자동차 관련 비중은 34.1%로 압도적이다.

이번 협상에서는 관세 문제뿐만 아니라 환율과 관련한 논의도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언론은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4일 “정부는 트럼프행정부와 협상에서 관세와 환율을 분리한다는 방침”이라며 “각각 별도의 담당 각료가 협상에 임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라고 전했다.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은 지난주 베센트 장관과 이달 하순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가(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등의 일정에 맞춰 환율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할 것임을 밝혔다. 이에 앞서 베센트 장관은 이달 7일 SNS에 글을 올리고 미일 관세협상에서는 환율 문제도 중요한 분야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라 아야코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시장기획부장은 “트럼프 정권은 대규모 무역적자를 내는 일본에 대해 엔저를 시정하기 위해 환율 문제에 대한 협의를 요구할 것”이라며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제 2의 플라자합의’와 같은 새로운 합의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러한 합의가 가능할지, 얼마나 지속적인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고 했다.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 등 협상안 고심 = 미국은 일본의 비관세 장벽에 대해서도 협상 지렛대로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7일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의 비관세 장벽은 다수 있고, 그 장벽도 대단히 높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13일 자신의 SNS에서 “비관세 장벽이 높은 나라들은 누구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미국이 지금까지 일본의 비관세 장벽으로 주장한 분야는 자동차와 농산물, 지적재산권까지 폭넓은 분야에 걸쳐 있다. 자동차의 경우 일본 독자적인 안전기준이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불공정하고, 전기자동차(EV)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정책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농산물 수입에서도 높은 비관세 장벽을 세워 미국산 수입을 어렵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시바 총리는 14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이 제기하는) 비관세 장벽에 대해서 정밀하게 분석해서 대응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의 공세에 대해 일본 정부는 △추가적인 미국 현지 투자 △알래스카 LNG 사업 검토 △미국 첨단무기 구매 확대 등 다양한 카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다만 이번 교섭과정에서 미국측이 어떤 태도와 입장을 가지고 협상안을 내놓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양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알래스카 천연가스(LNG) 개발사업 등이 거론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토 요지 경제산업상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LNG 개발사업 참여와 관련 “카드의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개발이 물리적으로 쉽지 않고, 기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어 채산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앞서 베센트 장관은 지난 8일 “한국과 일본, 대만이 많은 자금을 제공할 것으로 본다”며 “(LNG개발이) 관세 인하 등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협상 결과, 우리나라에도 영향 미치나 = 미국이 처음으로 상대하는 일본과의 협상 결과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일 교섭은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도 선례가 될 것”이라며 “미국이 동맹국인 일본을 상대로도 조건을 높게 내걸어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일본측은 미국이 안보 현안을 집어 넣어 협상을 주도할 수도 있다고 보고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미국은 일본을 지켜주고 있지만 일본은 미국을 지킬 필요가 없다”면서 “무역협정에서도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안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협상에서 거래의 일환으로 안보협력의 기본틀에도 손을 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행정부 안에서 일본의 방위비 부담을 명목GDP의 3% 수준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미국의 각종 무기를 추가로 구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결과는 자민당과 이시바 내각의 명운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이 정한 90일간의 유예기간이 끝나면 올해 7월쯤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면 선거에서 정권에 유리한 재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정반대의 경우 안그래도 낮은 정권 지지율을 고려할 때 집권 자민당의 고전이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14일 대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인도와 같은 3개국과는 즉각 협상을 진행하라’고 밑에 지시를 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우선 산업부 장관을 중심으로 협상단을 구성하고 빠른 시일내 상의를 집중해 본격적인 협상에 착수하겠다”며 “필요한 경우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해 해결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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