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파나마운하 갈등’ 속 이탈리아 재벌 등장
리카싱 항만운영권 매각서
블랙록 제치고 주역 떠올라
이탈리아 해운재벌인 잔루이지 아폰테 가문이 홍콩 재벌 리카싱으로부터 파나마의 항만 두곳을 포함한 세계 23개국 43개의 항만을 인수하는 컨소시엄의 대표 투자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거래는 리카싱의 CK허치슨홀딩스와 미국 사모펀드 블랙록이 주도하는 컨소시엄간 진행돼 온 것으로, 파마나운하 운영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간 갈등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사안이다. 중국은 미국 측이 연루됐다는 이유로 이 거래를 강하게 반대해 왔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폰테 가문이 소유한 스위스 제네바 소재 ‘터미널 인베스트먼트(TiL)’는 이번 거래가 완료되면 파나마의 2개 항만을 제외한 모든 항만을 단독으로 소유하게 된다. 파나마의 2개 항만은 미국 사모펀드 블랙록 산하의 글로벌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GIP)가 51%, TiL이 49%를 보유하게 된다. TiL의 지배구조는 블랙록과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GIC가 총 3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 파나마 운하 인근 항만 두 곳의 가치는 전체 거래 금액의 약 4%를 차지하며, 거래가 성사되면 CK허치슨홀딩스는 190억달러(27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이 거래는 현재 실사, 세금 및 회계 점검, 그리고 항만이 위치한 각국 규제 당국의 승인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거래 참여자들은 항만 운영진과 기존 운영 규정을 유지하기로 약속한 상태이며, 이들 항만 대부분은 공용 터미널로, 모든 해운사에 차별 없이 개방돼 있는 구조라고 또다른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거래 조건은 아직도 조율 중이며, 최종적인 지분 구조와 컨소시엄의 구성도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계자들은 밝혔다.
파나마 운하의 양쪽 끝에 위치한 두 개의 주요 항만인 발보아와 크리스토발을 포함한 43개 항구에 대한 CK허치슨홀딩스의 매각 시도는 지정학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를 중국이 통제하고 있다는 이유로 군사력 사용까지 시사하며 통제권 환수를 주장해왔다. 이에 파나마는 CK허치슨과의 파나마 항구 운영 계약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2월에는 중국과의 일대일로 협정을 탈퇴하는 등 ‘미국 달래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달 CK허치슨은 항만 운영권 90% 지분을 블랙록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약 190억달러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이번엔 중국 정부의 반대로 거래가 중단됐다. 주요 항구의 항만운영권은 유사시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데, 리카싱이 정부와 상의없이 미국에 넘기려하자 중국 지도부가 격분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8일 파나마 정부가 CK허치슨홀딩스가 항구운영 계약을 적절하게 갱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감사 결과 파나마 정부가 불법을 확인하고, 대법원이 계약을 무효라 선언하면 CK허치슨의 2021년 양허 계약이 취소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미국 기업과의 항만 운영권 거래 역시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