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한국경제

2025-04-21 13:00:17 게재

1분기 우리나라 경제가 역성장한 것으로 추정됐다. 관련 통계를 산출하는 한국은행이 17일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내놓은 성장 흐름 평가보고서를 통해 지난 2월 전망치(0.2%)를 밑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은이 공식 발표 이전에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이 나쁘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고 평했다. 탄핵정국 장기화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증대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차별 관세부과 조치, 대형 산불, 일부 건설현장의 공사 중단 등 악재가 몰아쳤다.

사실 경기불황은 길거리에서 쉬이 읽힌다. 문 닫은 가게나 ‘임대 문의’를 써 붙인 상가들이 늘고 있다. 먹고 입는 소비행태가 빠르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지만,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위축된 소비심리가 연말 경기와 새해효과까지 삼키며 악영향을 미쳤다.

계엄 여파 소비위축에 1분기 마이너스 성장

한은 금통위는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큰 데다 위험수위인 물가와 가계부채 등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이창용 총재는 “날이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지만, 금리인하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총재 스스로 한은의 2월 전망 시나리오(연간 1.5% 성장)는 “너무 낙관적이었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 필요성이 대두된다.

1분기 내수 부진과 2분기부터 본격화할 트럼프발 관세폭탄 후폭풍으로 인한 수출 감소를 감안하면 올해 연간 성장률은 ‘낮은 1%대’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 투자은행(IB) 등 40여개 경제분석기관의 한국 성장률 전망치 중위값은 1.4%, 하위 25%는 1.1%다. 0%대를 전망한 곳들도 있다.

미국·중국 간 관세전쟁이 치킨게임으로 치달으며 세계 교역은 더 급격히 위축될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16일 올해 세계 상품무역이 지난해보다 0.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3.0% 증가할 것으로 봤는데, 이번에 감소 전망으로 돌아섰다. 내수 부진과 산불 피해, 통상 현안 대응과 산업 경쟁력 저하 등을 고려하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상당 규모 추가경정예산 투입이 필요한데 불황으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아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추경을 편성하며 국채를 발행하면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정부는 12조2000억원 규모 추경안을 마련했다. 추경안의 성장률 제고 효과를 0.1%포인트로 예상했다. 국회심의 과정에서 추경 규모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은 최대 35조원, 최소 15조원을 증액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브랜드 정책인 민생회복 소비쿠폰 포함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과 공방이 예상된다.

대한민국에서 국민 노릇 하기 여간 힘들지 않다. 정치가 국민 삶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권 행태를 걱정한다. 계엄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 대통령 구속과 구속 취소,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국민은 헌법과 법률 공부를 해야 했다.

조기 대선 상황에서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왜 그전 집권여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며, 본인은 침묵하는지 가늠해봐야 한다.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최상목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지적을 받고 팔았다는 미국 국채를 왜 또 매입했는지, 달러화 가치와 미 국채 금리, 국채 가격과의 인과관계도 알아보고 말이다.

대미 관세협상에 신중 기해 국민과 기업 더이상 힘들지 않게 해야

3월 12일 미국이 철강·알루미늄에 첫 품목 관세를 부과하자 지난달 한국 철강제품의 미국 수출액이 18.9% 감소했다. 미국이 예고한 25% 상호관세와 반도체·자동차 등에 대한 품목 관세가 더해지면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더 큰 충격을 받을 게다.

최상목 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번 주 미국에 가서 관세 협상을 한다. 미국은 관세 외에도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투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포함한 패키지 딜을 제안할 태세다. 행여 한덕수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며 내세울 욕심으로 협상을 서둘러 국익에 손상을 끼치는 일을 저질러선 안 된다. 협상에 신중을 기해 국민과 기업들을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기 바란다.

양재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