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 그 이후
산불 뒤 논쟁 반복…분절적 산림 관리 한계 벗어나야
지번 아닌 유역 단위 관리 체제 강화 시급 … 산림 소유주가 자발적으로 제도 집행에 나서는 구조 만들어야
지난달 경북 5개 시군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인한 피해 복구가 한창이다. 영남 산불 피해와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각종 예방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덩달아 관련 예산 확대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생명과도 직결되는 재해 예방 대책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과거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지적과 대책에도 해결이 안 된다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도 필요하다. 정책 따로 집행 따로 식의 대책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산불이 발생한 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산림복원 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도 실제 집행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몇십 년간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어렵게 세운 계획이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이 됐는지 국회 차원에서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
18일 이규송 국립강릉원주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영남권을 강타한 대형산불 이후 피해 복구와 산림 복원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연복원과 인공조림 중 적절한 선택의 문제와 △인위적으로 형성한 소나무 숲에 불이 붙어 피해가 가속화된다 등의 논쟁이 반복된다. 이 첨예한 논쟁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아무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만든 정책이라도 사유림의 경우 본래 취지를 반영한 집행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 의원들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산불 발생 대응방안과 산불 발생 후 환경피해 예방을 위한 전문가 세미나’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지적한 사항이다.
임주훈 전 산림복원협회 회장은 “아무리 좋은 복원 혹은 산불 예방책을 가져와도 해당 산림의 소유자가 거절을 하면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다"며 “소규모 사유림 소유자들을 무시한 채 정책만 설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토양과 물 순환 등 장기간 영향 미쳐 = 산불은 꺼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 영향은 장기간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진다.
한 예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토양에는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 토양 성질의 변화는 산림생태계의 물 순환과 생물지구화학적 순환 과정에 영향을 끼친다. 이 변화의 정도와 기간은 △산불 강도 △온도 △산불 빈도 △산불 발생 전후의 기상 조건 △식생 종류 △지형 등에 따라 달라진다.
김범철 강원대학교 명예교수는 “하천이 토사로 덮이면서 장기간 영향을 미친다”며 “자갈 틈은 수서곤충 서식지이자 하천생태계 건강성 유지에 중요하지만 육상 식생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식생 그늘 효과가 없어져 낮에 수온이 상승해 일교차가 심해지면서 생물이 받는 스트레스가 높아진다”도 덧붙였다.
산불이 발생하면 일부 양분이 기체 상태로 손실되고 재가 늘어난다. 이러한 변화로 양분 수치와 양분 유효도가 달라지면서 식물 생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토양 유기물 감소는 토양 입단의 안전성과 △토양 발수성(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성질) △토양 용적밀도 △미생물이나 균류 활성과 같은 물리·생물적 성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형태 국립산림과학원 과장은 “산불에 의한 수질 영향은 2차에 걸쳐 발생한다”며 “산불 발생 3개월 이내에서는 적은 비가 내려도 고농도의 난분해성 유기물질이 다량으로 유출된다”며 “장마철에는 집중호우에 따른 유량 및 부유토사 증가로 오염물질 부하량이 집중 발생한다”고 말했다.
임 전 회장은 “영남 산불 피해 규모가 워낙 큰 만큼 지역 전체를 새롭게 개발하듯 체계적으로 복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트윈 물관리 플랫폼 등 기존 재원 활용 = 이번 산불을 계기로 통합적인 산림관리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다. 산림은 하나의 유역에 형성된다. 하지만 이를 인간의 편의에 따라 수백 또는 수천개 지번들로 쪼개져 관리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산림 정책이 있어도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1980년부터 유지돼 온 임반(고정구획단위로 산림골격 형성)이나 소반(최소구획단위) 등으로 구획하는 체계에서 벗어나 유역 단위의 통합적 산림관리로 전환해 보호와 이용의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최소 유역 또는 지역 단위로 바꿔 관리해야 궁극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갖춘 산림 경영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산림의 약 67%가 사유림이다. 지번이나 지역에 근거해 조림과 벌채가 파편적으로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사유지는 산불이 나도 기대만큼 보상을 못 받으니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관리할 동기 부여가 잘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임업과 산림소유주가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
한편, 이번 산불을 계기로 각종 투자와 예산 확대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물론 대형 산불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전에 적절한 투자를 하는 건 필수다. 하지만 이미 있는 재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박평록 한남대 교수는 “산불 확산 정도를 미리 예측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 물관리 플랫폼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산불 확산을 예측하기 위한 관련 자료들만 해당 시스템에 넣으면 되는 구조라서 여러 가지로 활용도가 높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를 디지털 세계로 복제해 가상공간에 현실에 있는 것과 유사한 구조물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디지털 트윈 물관리 플랫폼은 강우로 인한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시뮬레이션을 해 피해 예방을 위한 의사 결정을 돕는 시스템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