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깨진 토양 순환, 새 생태계 등장
탄소-질소-인 균형에 변화
55년 장기간 영향 받을수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라’. 화재는 토양의 생화학적 순환 고리를 깨뜨린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흙 속에는 탄소(C) 질소(N) 인(P)이 밀접하게 연결된 순환 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 세 원소가 특정 비율로 유지돼야 생태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데, 화재로 인해 균형이 깨지게 되면서 문제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더욱이 그 영향은 화재가 날 당시에만 미치는 게 아니라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어 심각하다.
유기물의 기본 구성 요소인 탄소는 미생물의 에너지원 역할을 한다. 질소는 단백질과 데옥시리보핵산(DNA) 합성에 필수적이며, 토양 미생물 활동에 의해 변환된다. 인은 △DNA △리보핵산(RNA) △생물학적인 에너지 분자인 ‘아데노이신 삼인산(ATP)’ 등 에너지 전달 분자에 필요하다.
2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의 논문 ‘화재로 인한 전세계 토양 생화학적 관계의 교란(Fire-driven disruptions of global soil biochemical relationships)’에 따르면, 화재로 토양 탄소가 감소되며 생태계 유형과 기후에 따라 그 영향은 크게 달라졌다. 화재로 인한 교란은 생태계 발달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탄소 질소 축적과 인 가용성 감소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해 생태계 기능이나 균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
연구진은 1950년부터 2023년까지의 471개 연구에서 관측 자료 5460개를 분석했다. 전세계 자료를 표준화해 화재가 토양 탄소와 질소 인 함량에 미치는 국제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 메타분석 방법 중 하나인 ‘자연 로그 응답 비율(LnRR)’이라는 지표를 사용했다.
그 결과, 화재로 인해 토양 탄소가 약 18% 감소했다. 총 질소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인 함량은 약 22% 증가했다. 미생물 바이오매스(생물량)는 약 18% 감소했다.
화재로 인한 토양 탄소 양의 변화는 기후대 별로 달랐다. 추운 기후 지역은 건조하거나 열대·온대 생태계보다 화재 영향을 더 심하게 받았다. 한랭 기후에서 토양 탄소는 약 26% 감소했다. 반면 열대·온대 기후에서는 약 10% 줄었다.
연구진은 “추운 기후와 침엽수림에서는 영양소 순환이 느리고 미생물 활동이 낮아 화재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토양 탄소의 경우 화재 후 55년까지 영향이 지속될 수 있다. 이는 생태계가 화재 후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전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 연구는 화재 체제 분류를 단순화하고 북미나 서유럽 자료에 치중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화재는 해당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토양의 생화학적 순환을 위협하는 화재는 탄소 저장은 물론 생물다양성, 식량 안보 등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식생 파괴나 대기 오염만이 아니라,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균형의 교란이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은 융복합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