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달러 가속’ 안전자산 위상 흔들

2025-04-21 13:00:16 게재

금·엔·스위스 프랑에 밀려 신뢰 추락 … 정치·재정 리스크에 투자심리 급변

미국 달러 지폐와 주가 하락 차트가 나란히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면에서 이어짐)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스티븐 미란은 지지난주 연설에서 “달러 수요가 금리를 낮게 유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통화 시장을 왜곡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은 미국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부담을 안겨 그들의 제품과 노동력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대체재 없어 지배력은 유지 = 트럼프 취임 이후 관세·무역 정책 등 거의 모든 조치는 달러의 지지 기반을 약화시켰다. 이달 둘째주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측정하는 DXY 달러 지수는 2.8% 하락했다. 이는 지난 30년 동안 7번째로 큰 주간 하락폭이다. 지난 주에도 하락세를 이어가며 올들어 하락폭은 8.2%로 확대됐다.

미국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정학적이든 무역이든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는 일반적으로 시장이 불안할 때 강세를 보이는 스위스 프랑과 일본 엔과 같은 다른 “안전 자산” 통화를 상대로 약세를 보였다. 금 값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온스 당 3350달러을 상회하며 역대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달러가 안전 자산에서 제외되는 듯 보이는 것은 분석가와 투자자들에게 충격적인 상황이다.

도이체방크의 외환연구 글로벌 대표인 조지 사라벨로스는 11일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철회에도 불구하고 달러에 대한 피해는 이미 발생했다”고 썼다. 그는 “시장에선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구조적 매력도가 재평가되고 있으며, 급격한 탈달러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실행 가능한 대체재 부족 때문에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끝날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유로는 하나의 통화 연합이지만 20개의 다른 국가로 구성되어 있고, 중국은 위안화를 달러와 사실상 고정시키고 자본통제를 하고 있으며, 스위스 프랑과 일본 엔과 같은 통화가 경쟁자가 되기에는 각 국의 경제 규모가 너무 작다.

세계적 싱크탱크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의 마크 소벨은 “실행 가능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달러의 지배력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달러 가치, 향후 1년간 6% 더 하락” = 대안 부족으로 인해 달러의 역할이 유지될 수 있을지라도, 여전히 가치를 잃을 수 있다. 4월 하락에도 불구하고 DXY 달러 지수는 2020년 저점보다 여전히 12%, 2008년 초 저점보다 거의 40% 높은 수준이다. 많은 외환 분석가들은 달러의 추가 하락을 예측하고 있다.

전에는 달러에 대해 낙관적이었던 대형은행 골드만삭스는 이제 향후 12개월 동안 달러가 1유로당 1.20달러, 1달러당 135엔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 수준에서 6% 추가 하락이다. 골드만의 외환 분석가들은 “미국 정치 제도에서의 부정적인 추세가 오랫동안 미국 자산이 누려온 과도한 특권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싱크탱크 책임연방예산위원회에 의하면 미 의회는 지난 10일 향후 10년 간 5조8000억달러의 재정 적자를 더 할 수 있는 예산안을 승인했다. 2024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7%를 기록했으며, 이번 예산안으로 적자가 2% 증가할 것이다.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면, 앞으로 재정 적자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며, 채권 금리 상승도 예상된다.

탈달러화는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외환보유액에서 달러의 비중은 2001년 73%에서 현재 58%까지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동안 호주 및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및 스위스 프랑을 포함한 다양한 통화의 비중은 상승했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지난 3년 동안 3000톤 이상의 금을 사들였으며, 이는 이전 3년보다 1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콜롬비아스레드니들인베스트먼트의 개리 스미스는 탈달러화 흐름이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의 관세 공세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향후 10년간 달러 보유 비중이 추가로 1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에 와선 그 예측이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미국 금융계의 거물이었던 시티코프 회장 월터 리스턴이 생전에 말했듯이 “자본은 환영받는 곳으로 가고, 잘 대우받는 곳에 머문다.” 미국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투자처로 꼽혀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이 명제가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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