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불안’에 알프스로 몰리는 미 부유층

2025-04-22 13:00:22 게재

산간마을 아파트매입 급증 달러 떠나 스위스 프랑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무역 전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 부유층들이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작은 마을 안데르마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은 현지 아파트를 사들이며 자산을 스위스 프랑화로 옮기고, 경우에 따라 유럽 시민권 취득까지 추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미국의 불안정한 부유층들이 스위스 알프스의 휴양지 안데르마트에 아파트를 사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안데르마트 신축 아파트에 대한 미국인의 문의는 1260건에 달했다. 이들이 매입하거나 계약금을 낸 금액은 총 1420만 스위스프랑(약 174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미국인 전체 매입액(770만 스위스프랑)의 두 배 가까운 규모다.

특히 거래의 3분의 1 이상은 부활절 직전 한 주 동안 집중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관세 조치가 시장에 충격을 주던 시점과 맞물린다. 현지 개발사 안데르마트 스위스 알프스의 러셀 콜린스 최고사업책임자(COO)는 “올해 초부터 매출 그래프가 하키스틱 곡선을 그리며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콜린스에 따르면, 다수의 미국 구매자들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자산 가치 하락 우려에 대비해 ‘안정적인 스위스 프랑 자산’을 찾고 있다. 스위스 프랑은 올해 들어 달러 대비 11% 상승했고, 작년 동기보다 약 12%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안데르마트는 스위스 내에서도 외국인 부동산 매입이 허용된 보기 드문 지역이다.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로 분류돼 외국인의 부동산 거래 규제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또 2040년까지 ‘세컨드홈 제한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안데르마트 아파트 구매자는 주로 미국 동부 해안 출신이지만, 네브래스카나 마이애미 등 다른 지역 거주자도 포함돼 있다. 뉴욕의 한 50대 테크 기업가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이곳 부동산을 샀다”며 “정치적 이유뿐 아니라, 미국이 점점 내가 원하던 국가가 아니게 되는 느낌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20만 스위스프랑짜리 2베드룸 아파트를 구입했고, 스위스 은행에 자산 일부를 옮긴 뒤 유럽 시민권까지 취득해 스위스 거주를 준비 중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KPMG의 파트너 필립 준트는 “올들어 스위스 거주 문의를 해 온 미국인의 수가 예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며 미국 내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이 같은 ‘자산 도피’ 흐름은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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