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저작권보호
인공지능 기본법에 저작권 보호는 ‘공백’
“창작자 권리 보장 위한 법적 정비 시급” … 해외는 학습데이터 공개 의무 명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인공지능 기본법)이 2026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인공지능 기본법은 향후 인공지능 산업과 관련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법안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본법에는 학습데이터 공개 의무나 저작권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18일 전북대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저작권 보호 목적의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나라 헌법은 창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기본법은 저작권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체계에 관한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서둘러 입법됐습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 시대, 방송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 제도적 과제의 모색’이라는 발표를 맡은 박희경 문화방송 법무팀 차장(변호사)의 주장이다. 이날 박 차장은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 저작권 보호에 관한 주요 쟁점과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며 인공지능 기본법의 조속한 후속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산업 발전 위주 인공지능 기본법 우려 = 1월 제정된 인공지능 기본법은 인공지능의 건전한 발전을 지원하고 인공지능 사회의 신뢰 기반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 사항들을 규정하는 법이다. 이로써 국민의 권익과 존엄성을 보호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대한민국 인공지능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자 한다.
인공지능 기본법은 인공지능, 고영향 인공지능, 생성형 인공지능, 인공지능윤리, 인공지능사업자 등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의 건전한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을 위한 추진체계 △인공지능기술 개발 및 산업 육성 △인공지능윤리 및 신뢰성 확보 등을 담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년마다 인공지능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이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치게 돼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본법에는 창작자 및 창작물에 대한 보호를 위한 학습데이터 공개 의무나 저작권자에 대한 보상 의무 등은 포함되지 않은 상황이다. 입법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자 등을 고려해 “학습데이터 공개 의무 등을 인공지능 기본법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인공지능 기본법 제정 이후 후속 논의하자”는 주장이 우세했다.
2024년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정향미 문체부 저작권국장은 “창작행위에 관계되는 인공지능의 개발, 활용에 대한 학습데이터 목록을 공개해야 된다고 선언적 조항을 넣고자 한다”면서 “인공지능업계 권리자 학계 법조계와 워킹그룹을 운영하고 있으며 추가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차장은 “법을 빨리 통과시켜 인공지능 산업의 발전을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입법과정의 주된 논의였고 그 과정에서 저작권자 보호와 관련된 조항은 소외됐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로부터 적법한 이용 허락 필요 = 해외 인공지능 관련법에는 인공지능의 학습데이터에 대한 공개 의무가 규정돼있다. EU 인공지능법(Artificial Intelligence Act)은 2024년 5월 EU 이사회에 의해 승인됐다. 이에 따르면 인공지능 사무국이 제공하는 양식에 따라 범용 인공지능 모델 제공자는 인공지능 모델의 학습에 사용하는 콘텐츠에 관해 상세한 요약을 작성하고 공개하도록 돼있다. 인공지능이 학습한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를 학습했는지 사업자가 직접 밝히라는 조항이다. 또한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나 데이터 아카이브 등 모델을 훈련시킨 주요 데이터 집합을 나열하고 사용된 데이터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저작권자를 포함한 정당한 이해관계자들이 법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미국의 경우, 인공지능 학습데이터를 공개하는 의무를 담은 입법안(Generative AI Copyright Discourse Act of 2024)이 발의된 바 있다. 해당 법안에는 생성형 인공지능 체계 구축에 사용되는 학습데이터와 관련해 저작권을 보호해야 하는 작품에 대해 상세한 요약을 제출하게 돼있다.
또한 인공지능 사업자가 인공지능을 학습시킨 저작물의 저작권자로부터 적법한 이용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픈 AI는 월스트리트저널을 소유한 뉴스코퍼레이션과 5년 동안 50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 AP(Associated Press), 독일 출판기업 악셀 슈프링어,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와도 계약을 체결했다.
박 차장은 “학습 데이터 공개 의무는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과 관련된 규제를 할 때 함께 거론되는 조항임에도 국내에서는 인공지능 기본법을 빠르게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논의가 제외됐다”면서 “향후 개정안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가 선제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작권자들이 인공지능 사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많이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소송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권리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인간의 창작 산업과 인공지능 산업이 함께 발전하기 위해선 인공지능 학습이용 등과 관련해 정당한 보상의 필요성을 인공지능 기본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입법 동향 주시” =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인공지능 투명성 확보 의무에 관한 논의도 진행됐다. 인공지능 기본법에 따르면 인공지능 사업자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 이미지 영상 등을 제공하는 경우 해당 결과물이 인공지능에 의해 생성됐다는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보도나 시사 프로그램이 일부 음향 등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제작할 경우 해당 의무가 적용되는지 등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와 관련한 내용은 전세계적 추세보다 도입 시기가 빨라 관련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태경 법무법인 KCL 변호사는 “인공지능 사업자가 학습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으면 권리 침해를 입증하는 데 권리자의 부담이 과도해지고 이와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콘텐츠 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나아가 인공지능 기업의 지속적인 무단 데이터 학습은 시장 지배적 지위의 고착화와 연결되기 때문에 단지 저작권 문제에 그치지 않고 공정거래법 등에 저촉되는 시장 건전성 문제로까지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진 문체부 저작권정책과장은 “저작권 현안은 국제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다른 국가들과 법적용 방식의 차이가 클 경우 국제적 차원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국내 인공지능 관련 법률 개선은 다른 부처 등과의 협조 아래 해외 입법 동향을 주시하며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