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LNG 수출 확대는 공허한 꿈”
'트럼프 관세'가 부른 역풍
"미국내 인프라 부족하고
세계 가스수요 둔화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확대 구상은 관세 정책 여파와 인프라 한계에 부딪혀 실현되기 어렵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국가들이 미국산 연료를 구매하면 관세 압박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최근 “유럽연합(EU)이 미국산 연료만 구매하면 EU와의 무역적자가 쉽고 빠르게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인도, 필리핀 등 동맹국에도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확대를 압박해왔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일본, 한국, 대만을 대상으로 알래스카 LNG 대형 프로젝트 투자와 생산물량 상당량 구매를 강권했다.
사실 미국은 지난 10년간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 최대의 LNG 생산·수출국으로 자리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 시절 시행됐던 메탄 배출에 대한 환경규제를 철폐하는 등 업계 성장을 독려해왔다.
미국 LNG업체 벤처글로벌의 마이크 사벨 CEO는 “LNG 수출 확대가 무역적자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이 회사는 1월엔 채권 발행이 부진했으나, 이달 15일 트럼프의 관세 발언 이후 처음으로 자회사를 통한 25억달러 규모의 하이일드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동맹국들도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러시아산 가스 의존 축소 계획을 5월 초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일부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산 가스로 대체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산 LNG에 대한 관세 철폐를,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알래스카 프로젝트 투자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LNG 수출 확대는 현실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다면서 그 첫째 원인으로 미국 내 인프라 부족을 지적했다. 미국 가스업체 EQT의 토비 라이스 CEO는 “가스는 충분하지만 운송할 파이프라인이 없다, 수출터미널들은 이미 최대 가동 중”이라고 실정을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내에서는 관세 때문에 LNG 프로젝트에 필요한 철강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컨설팅업체 리스타드에너지의 카우샬 라메시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새로운 가스 공급이 대거 유입될 조짐은 없다”고 분석했다. 이미 확정된 LNG 확장 물량은 장기계약으로 해외에 매각된 상태이며, 신규 프로젝트는 장기 구매계약 없이는 자금조달이 어렵다는 말이다.
구매계약 체결 감소도 난관으로 지적됐다. 트럼프의 무역전쟁으로 주요국 경제가 타격을 입으며 가스 수요 둔화가 예상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아시아의 가스 수요 증가율이 올해 2%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2024년 5.5%에서 급감한 수치다. 미국산 LNG 구매 확대가 예상됐던 중국은 지난달부터 미국산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유럽은 다소 긍정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가스 공급 축소로 가스 부족을 겪어왔으며, IEA는 유럽의 LNG 수입이 올해 2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실제 유럽 바이어들은 미국산 LNG 장기계약 체결을 꺼리고 있다. 기후규제로 가스 사용이 금지될 가능성, 수년 내 세계 가스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폭락 우려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가 기대하는 우크라이나 평화협정 체결 후 러시아산 가스 공급 재개 가능성도 있다. EU 당국은 이를 불허하겠다고 밝혔지만, 독일 산업계는 이미 러시아산 저가 가스 재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유럽이 미국산 LNG 수입을 대폭 늘려도 미국과의 무역불균형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는 EU가 LNG, 디젤, 경질 원유를 모두 미국에서 수입하더라도 상품 무역수지 흑자가 절반 줄어드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미국산 가스 수출 확대 구상은 “현실성 없는 공허한 꿈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