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전’ ‘건교부 등에 통폐합’…해수부 대선 격랑 속으로
김대중·박근혜정부에서는 비효율 이유로 ‘이전 논의’ 중단
이명박정부는 국토해양부·농림수산식품부로 통·폐합 단행
해양수산부가 6.3 조기 대통령선거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유력 후보인 이재명 의원이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공약하자 해수부는 어수선한 분위기다. 해수부는 아직 경선과정이고, 후보의 공약에 대해 일일이 입장을 밝히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소속 공무원들은 “정말 부산으로 가는 것인지” 서로 물으며 흔들리고 있다.

해수부 공무원들 뿐만 아니라 해운기업을 포함한 해양계도 그동안 몇 차례 거론되는 정도에 그쳤던 부산 이전 요구가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식으로 증폭될지 주목하고 있다.
6.3 조기 대선에 나선 주요 정당 중 대선 후보를 확정한 개혁신당은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해수부는 폐지하고 해운 등의 기능은 ‘건설교통부’로, 수산 등의 기능은 ‘1차산업부’로 통·폐합하는 안을 공약했다.
◆설립 30주년 앞두고 흔들리는 해양수산부 = 1996년 김영삼정부에서 설립된 해수부가 내년 설립 30주년을 앞두고 다시 흔들리고 있다.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지만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후보는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공약했고, 후보가 확정된 개혁신당은 해수부를 폐지하고 다른 부처와 통·폐합하는 안을 공약했다.
‘해수부 부산 이전’ 주장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당시 노무현 해수부 장관 시절 처음으로 공식 논의됐다. 부산지역에서 노 장관에게 부산이전을 강하게 요구했고, 노 장관이 방송사의 중계를 포함한 공개토론을 제안해 부산시청에서 토론이 진행됐다.
당시 토론을 기억하는 해양계 한 인사는 “당시 노무현 장관은 본인이 장관이 돼 보니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담당 부처 과장에게 밥을 사야하는 일도 있더라며 장관으로서 참석한 국회, 청와대, 관계부처 회의 등을 밝히고 부산으로 이전했을 때의 비효율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장관은 국회 청와대(대통령실) 관계부처 등을 만나서 활동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부산으로 옮겼을 때 할 수 있겠느냐, 이런 일을 하려면 서울(당시는 세종시로 옮기기 전)에 있어야 하는데 부산에 있는 직원들은 장관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 하는 식의 논의가 있었고, 토론내용이 방송된 후 부산이전 요구는 잦아들었다.
박근혜정부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공약한 해수부 부활과 부산이전을 검토했지만 해수부만 부산으로 이전하는 비효율 등을 이유로 실제 추진되지는 않고 다른 부처들과 함께 세종에 자리잡았다.
부산으로 이전은 중앙행정부처 업무의 비효율성 문제 외에도 다른 지역의 반발, 해당 공무원들의 이주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 후보의 공약 발표 이후 인천과 세종시에서 부산이전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공식 발표됐다.
인천항발전협의회 인천상공회의소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20일 “해수부 부산 이전은 특정 지역의 이해를 넘어 국가 전체의 해양물류 체계와 정책 효율성, 그리고 균형발전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이기에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며 인천지역사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최민호 세종시장과 세종지역 시민단체도 반발했다. 최 시장은 23일 기자회견에서 “균형발전 차원에서 세종으로 이전한 45개 행정기관 중 해수부를 다시 이전해 부산을 해운·항만 메카로 키우겠다는 뜻은 지엽적으로는 이해되지만 큰 범위에선 합리적인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수도완성 시민연대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해수부가 이전되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 측면에서 실익보다 손실이 더 크며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을 수 있다”며 “해수부 부산 공약은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서울·세종과의 거리 이격으로 행정 비효율성을 심화시키고 막대한 예산 낭비와 지역 간 갈등을 유발하는 악수”라고 지적했다.
◆기능중심 정부에서 공간중심 해수부 부조화 계속 = 해수부를 없애고 다른 부처와 통·폐합하는 안도 다시 등장했다.
이준석 의원을 대선후보로 확정한 개혁신당은 해수부를 건설교통부와 1차산업부로 통폐합하는 안을 공약했다. 이준석 후보 선대위가 23일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안 공약에 따르면 △현행 19개 부처를 13개로 대폭 줄이고 △13개 부처는 3개 그룹으로 편성해 3부총리 제도를 실시하는 구도에서 △기존 국토교통부 환경부 해수부는 통합해 건설교통부로 재구성하고 △농림축산식품부를 골격으로 하면서 해수부가 갖고 있던 수산 관련 기능을 가져와 1차산업부로 통합하는 안이다.
해수부를 없애고 다른 부처와 통폐합하는 안은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다른 정부부처는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지만 해수부는 공간을 중심으로 편성돼 해양 관련 업무가 산업통상자원부(조선, 해양에너지) 외교부(해양영토) 문화관광체육부(해양레저·관광) 국토교통부(물류) 행정안전부(섬) 등으로 흩어져 있는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해양 관련 업무가 흩어져 있어 해수부와 다른 부처들과 협력·조정기능이 중요하지만 부처간 칸막이를 넘을 정도의 위상을 갖지 못해 해양 관련 업계에서는 “해수부가 힘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해수부를 없애는 안은 김대중정부에서 처음 거론됐다. 1996년 해수부가 출범한 후 2년만이었고 논의는 유야무야 끝났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석했던 인사는 “없애는 게 맞지 않나 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중요하게 거론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노무현정부도 해수부를 개편해 물류를 강화하는 게 어떨까 하는 안을 일부 검토했지만 정부조직을 바꾸는 일이어서 역시 그냥 넘어갔다.
해수부는 이명박정부에서 해운 해양 등의 기능은 국토해양부로, 수산 기능은 농림수산식품부로 통폐합됐다. 거대한 부처에 속한 해운 해양 부문은 4대강사업을 주도한 국토부에서 후순위 정책으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해양지배력 회복 나선 미국 방법론 주목 = 부산이전과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며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해수부가 안정된 조직과 기능을 갖는 강력한 부처로 재구성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해양강국국민운동본부는 22일 ‘각 정당 차기 대선후보에 해양관련 7대 정책공약 채택 요청’ 성명을 발표하며 ‘더강한, 제대로 된 해수부 복원과 위상확립’을 촉구했다.
신해양국본은 △각 부처에 분산된 해양 조선 물류 해양플랜트 등 관련 기능을 해수부로 통합하고 △대통령실에 해양수산비서관을 복원하며 △해양부총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에 해양수산 기능을 총괄하는 비서관이 없고 농업계 인사나 공무원이 농해수비서관을 담당하는 구조에서 해양수산 관련 현안을 제대로 반영하고 소통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윤석열정부가 주요하게 추진한 국가바이오위원회에 해수부가 탈락하자 해양바이오의 중요성과 해수부 포함 의견을 대통령에게 상시 전달할 통로가 없어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최근 해양력 회복을 위해 집중하고 있는 미국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부도 관심사안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해양지배력 회복’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이에 따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명령이 발동된 날로부터 210일 안에 국무장관 국방장관 상무장관 노동장관 교통장관 국토안보장관 미국무역대표부 및 안보보좌관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행정부처·기관장과 협력해 대통령에게 ‘해양행동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트럼프는 수십년간 정부가 방치해 한때 강력했던 미국의 해양산업 기반이 약해졌고 적대국에 힘을 실어줘 미국의 국가안보가 약해졌다고 진단하고 미국의 해양지배력을 회복하는 행동에 나섰다.
트럼프정부의 해양지배력회복 조치는 바이든정부에서 시작했다. 극렬히 대립 갈등하고 있는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도 해양지배력 회복에는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국가해양위원회 신설 행동계획을 담은 ‘국가해양전략을 위한 의회지침’이라는 미국의 신해양전략을 초당적으로 채택했고, 이는 12월 ‘선박법’ 발의와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 이어졌다.
해수부 부산이전, 정부조직개편을 통한 다른 부처와 통폐합 등이 대선 기간 사회적 논쟁을 거치며 ‘해양강국 도약’이라는 목표에 걸맞은 방법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