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노동시간

국민의힘 ‘주4.5일제’로 시동, 민주당은 ‘주4일제’

2025-04-25 13:00:15 게재

근로시간 유연화냐 단축이냐 서로 방점 달라 …호주·영국, 이미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 모색 중

12.3 계엄에 이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에 따라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거대 양당은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있지만 제대로 된 노동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14일 ‘주4.5일제 시행과 주52시간 규제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발표하면서 ‘주4일제’ 논의에 불을 지폈다. 국민의힘 주4.5일제는 총 근로시간(주 40시간)은 그대로 둔 채 월~목요일까지 1시간씩 더 일하고(1일 9시간) 금요일에 오전만(4시간) 일하자는 내용이다. 이 방안은 지금도 가능하고 일부 기업과 지자체에서는 시행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근로기간 ‘유연화’ 방점을 찍은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단축’을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도 주4일제 도입 논의에 들어갔다. 이재명 대표는 2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4.5일제를 거쳐 주4일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한국노총을 방문해 “우리 사회가 노동시간 단축을 향해 주4일 근무사회로 나아가야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거대 양당이 대선후보를 확정한 뒤 본 선거에 들어가면 주4일제가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연간 근로시간은 1742시간인데 우리나라는 1874시간으로 132시간 더 많다. 한국의 장시간노동 실태와 호주 영국의 주4일제 법제도 추진 현황을 살펴본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회의에서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유지하되 유연근로제를 통해 실질적으로 주4.5일제의 이점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대선공약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는 15일 ‘이슈와 쟁점 : 한국의 장시간노동 실태와 노동시간 단축 모색’보고서를 내고 2022년 기준 통계청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분석했다.

2024년 임금노동자 중 1주 48시간 초과근로 규모는 206만1000명이다. 49~52시간 일한 임금노동자는 114만5000명, 52시간을 초과 노동한 임금노동자는 91만6000명이다. 정규직 노동자 중 48시간 초과 규모는 147만1000명이나 된다. 52시간 초과 비율은 비전형근로(6.6%), 정규직(4.5%)이 높았다.

1주 48시간은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럽연합(EU)이 정한 장시간노동 기준이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장시간노동 비율이 높았다. 9명 이하 사업장의 1주 48시간 이상 노동 비율은 16.6%로 가장 높았다. 이어 △100~299명(9.7%) △10~99명(9.4%) △300명이상(6.7%) 순이었다.

2024년 기준 27.5%의 노동자들은 부여된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유급연차휴가 적용 비율은 86.9%(55세 이상 고령 77.2%)였으나 100% 소진 비율은 72.5%였다. 연차 적용 비율은 100인 이상 사업장(32.9%), 10~29인 사업장(27.7%), 5~9인 사업장(27.5%), 30~99인 사업장(26.0%) 순이었다.

5만8230개 사업체를 조사해 분석한 결과 유연근로제를 도입한 사업체 중 28.2%는 ‘생산성 등 업무효과를 높이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다고 응답했다.

‘노동자의 일·가정 양립 지원’(46.4%)이었고 ‘인력출 방지와 인재영입’(13.4%), ‘근로시간 단축 대응’(6.8%), ‘노동자와 노조의 요구’(5.2%)가 뒤를 이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유연근로제를 도입했다는 응답은 사업장 규모가 커질수록 비중이 높았다. 5~9명 사업장에서는 22.7%를 기록해 ‘노동자의 일·가정 양립 지원’(46.7%)의 절반 정도였다. 하지만 10~29명 사업장은 각각 29.1%와 48.2%, 30~99명 사업장에서는 각각 37.0%와 42.5%, 100명 이상 사업장은 40.5%, 40.0%로 그 격차가 줄었다.

노동·시민사회단체 ‘주4일제 네트워크’가 지난달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 도입 및 노동시간 단축 인식조사 결과, 68.9%가 주당 연장근로 한도를 최대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단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58.1%는 주4일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일하는시민연구소는 주 40시간→36시간→32시간 등 단계적으로 주4일제를 시행하거나 노사 간 협의해 출근일을 4일 또는 5일 중 택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일하는시민연구소는 장시간노동 단축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과 장시간노동 해소 위해 실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주당 연장근로 한도를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낮추고, 연차휴가를 1년에 15일에서 20일로 확대, 야간 및 심야노동 기준 재규율, 포괄임금제 폐지 등을 제시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보수정부와 자본에서 주장하는 유연근로 형태의 주4.5일제는 자본의 이윤추구 목적이 숨겨져 있다”며 “48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자가 206만명이나 되는 현실에서 유연근로는 노동시간 단축을 왜곡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대선 기간 동안 여야 각 정당과 후보들이 어떤 노동시간을 공약으로 준비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의회, 영국은 근로시간위원회 주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는 22일 ‘호주 영국의 주4일제 법제도 추진 현황과 특징’ 보고서도 내놨다.

호주는 2023년부터 주4일제 논의가 의회와 정부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논의 검토 중이다. 2023년 3월 호주 ‘상원 노동 및 돌봄 특별위원회’가 정부에 ‘100대80대100’ 모델을 기반으로 한 주4일 근무제 시행을 권고했다. ‘100대80대100’ 모델은 80% 근무시간으로 100% 임금과 생산성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 6월 호주 공공서비스의 유연한 근무방식에 대한 공통 조항을 발표했다. 이 조항은 △직원들의 압축 근무 방식 △파트타임 근무 방식 △근무시간 변경 △재택근무를 포함한 근무지 변경 등 다양한 유연성 요청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호주의 공공서비스기관은 이미 시행하고 있고 직원들 투표와 ‘공정근로위원회’ 승인을 거쳐 연방정부의 다른 기관에도 점진적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호주 수도 정부는 2023년 12월 직원 급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주4일제 근무제 모델을 시범운영할 것을 밝히고 지난해 실무그룹을 구성했다. 실무그룹은 △관리 및 일선 업무 △정규직 및 비정규직을 포함 △주4일제 근무 시행하고자 하는 민간 부문과의 협력 방법 △지원구조 모색 등 로드맵 작성 역할을 한다.

5월 호주 연방의회 선거가 있다. 집권당인 노동당이 과반 이상 확보하지 못할 경우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주4일제를 공약하고 있는 녹색당과 함께 해야 한다. 녹색당은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를 도입하겠다고 지난달 17일 발표했다. 녹색당은 연방정부에 ‘주4일제 국립연구소’를 설립하고 ‘공정노동위원회’를 구성해 국가 차원의 시범사업 진행할 계획이다.

영국은 지난해 14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노동당을 중심으로 주4일제가 추진되고 있다. 노동당은 지난해 선거에서 주4일제를 포함한 공약을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선거 이후 노동당 정부가 발의한 고용권리법안에는 주4일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올해 2월 피터 다우드 노동당 의원이 주4일제를 의원입법으로 발의했다. 다우드 의원은 “주4일제로의 불가피한 전환을 수용해야 한다. 주4일근무제가 생산성을 높일 수있고 직원들의 번아웃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우드 의원이 발의한 주4일제의 핵심은 ‘노동시간위원회’(위원회) 설치다. 위원회는 주4일제 실행 가능성을 점검하고 임금삭감 없이 주4일제 근무 전환을 위한 권고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위원회에는 노조와 기업, 정부부처, 고용 관련 전문가가 참여한다.

김 이사장은 “우리도 대선 과정에서 주4일제가 쟁점이 될 수 있다”며 “근로기준법 개정과 노동시간위원회 설치 운영을 통한 로드맵을 모색하고 법률 시행에 앞서 시범사업을 추진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한남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