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달을 보라 가리키는 손가락에 갖는 관심
근로자의 실수를 사고원인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사고에서 결과적으로 지목되는 고의성이 없는 실수(불안전 행동)를 사고원인으로 간주해 그것을 근절하려는 시도들의 실효성에 관한 얘기다.
울퉁불퉁한 바닥 위에서 저글링을 하는 것과 같은 작업조건이라면 공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금지한다거나, 교육 훈련시켜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울퉁불퉁한 바닥을 평탄케 하고 다루는 공의 수를 줄여야 한다. 교육에 앞서 그런 행동을 유발한 작업 조건과 환경에서 그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인간 본성까지 가세하는 불안전한 행동
꽤 오래전 일이다. 충북 청주여자교도소 신축현장에서 발생된 사망재해를 조사했다. 공사부지 내 건물의 위치가 현장 입구와 가까워서 지하에서 진행되는 건물 기초공사 현장으로 내려가려면 건물 부지를 우회해 현장 입구 반대편에 형성한 완만한 경사로를 이용하도록 돼 있었다. 그 상황에 한 작업자가 현장 입구에서 가까운 급경사면으로 기초공사장으로 내려가던 중에 미끄러져 전락(굴러 떨어짐)해 사망했다.
사고 사망자는 일용직이고 돈내기(성과급) 방식으로 임금이 지급되고 있었다. 그에게 시간은 돈이었다. 전락의 위험을 감수하고 지름길인 급경사면을 택한 배경에는 성과급 방식의 임금 조건과 인간의 지름길 본성이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지름길인 급경사면에 안전한 가설 계단을 마련해 줬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악간의 비용이 들긴 하겠지만 많은 근로자의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결코 비용면에서도 실보다 득이 적지 않은 조치다. 그 경사면에는 이미 작업자들 다수의 통행으로 만들어진 발 디딤 자리가 있었다.
불안전한 행동 유발하는 작업 조건과 환경
완벽한 인간은 없다. 인간의 유사성 비교, 예측성, 추정성, 선입견과 같은 이해방식은 큰 틀의 통찰을 얻기에는 도움이 되지만, 정확한 의사결정을 방해하기도 한다. 기억능력의 한계 때문에 아는 것을 헛갈리거나 깜박 잊기도 한다. 자기 지식과 능력에 대한 검증기능이 없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조차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어림짐작으로 일한다. 인지적 한계로 인해 사실과 다른 여러 가지 편향적 사고를 한다. 집단적 사고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태생적 인지한계, 정보의 한계, 시간의 제약 등으로 인해 사고로 이어질 불안전한 행동 가능성을 늘 가지고 살아간다.
이와 같은 인간의 태생적 한계에 더해 산업현장의 작업 조건과 환경들, 예를 들어 과한 분절적 작업, 시간 압박, 주의 분산, 복잡성, 기계설비와 부적절한 작업 조합과 같은 작업조건들은 물론 과잉 자동화도 실수 유발을 압박한다는 것이 인지공학자들의 연구결과다.
근로자들의 작업이 안전한 동작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작업의 특성에 적합한 작업 조건과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작업마다 각각의 특성에 적합한 작업 조건과 환경을 설계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발생된 사고에서 실수로 볼 수 있는 행동을 유발하게 된 작업 조건과 환경에 관한 정보는 같거나, 유사한 작업장에 매우 유용한 정보일 것이다. 그 정보를 구하기 위해 제도의 신설까지 고려할 일인데, 다행스럽게도 이미 법으로 작동되고 있다.
산업재해 은폐를 방지하기 위해 정한 산업안전보건법 제57조의 시행 규칙에 산업재해 발생 사업주는 사고 관련 내용을 기재한 보고서를 관할 관서에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실제 발생된 연간 수만건에 달하는 사고에 관한 자료인 만큼 제대로 작성된다면 안전한 작업 조건과 환경은 물론, 불안전한 상태 즉 기계설비의 안전확보에 관해서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
통계분석에 사용한 기초자료가 부정확하면 그 통계분석 결과는 이용할 수 없다. 이용에 따른 득보다 실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산업재해조사표가 미래의 사고예방에 중요한 정보가 담긴 그릇이기는 하나, 전문지식으로 정제된 사고의 경위와 배경요인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는 식의 내용이라면 미래의 사고예방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없다면 모를까 법으로 정해 제출받고 있는 재해조사표를 미래의 사고예방에 활용될 수 있도록 그에 관한 적절한 관리를 촉구하는 얘기에, 관련 부처는 ‘방치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니 인용하지 말아달라’는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문득 ‘길가에서 용변보는 자는 나무라도, 길 가운데에서 용변보는 자는 나무라지 말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