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새 국면을 맞는 글로벌 지정학 구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국제적으로 신뢰 위기에 봉착했다. 그린란드 매각을 요구하고 군사 행동까지 거론해 유럽 동맹국들의 쌓였던 분노가 폭발 직전이다. 급기야 1월 3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고립된 미국(America Alone)이 될 위험에 처했다’라는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세계 전체적으로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영국인의 부정적인 인식은 64%로 긍정 비율의 두 배가 넘고 독일인의 71%는 미국을 ‘적대국’으로 보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미국을 동맹국으로 보는 사람은 단 16%에 불과하고 공격받는 유럽을 미국이 지켜줄 거라는 신뢰는 이미 사라졌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는 미국을 중국보다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한다.
미국 우선주의로 균열이 깊어지는 대서양 동맹
눈길을 끈 것은 ‘나의 관세 정책이 미국을 되살렸다(America Back)’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화자찬식 기고문이 같은 날 함께 실렸다는 사실이다.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대규모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시장 붕괴를 예측했으나 모두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적인 관세 부과’는 오히려 미국 경제에 기적을 가져왔다. 4%대의 높은 성장률과 1%대의 낮은 근원물가 상승률, 특히 관세를 활용한 18조달러 수준의 막대한 투자유치 등 실제보다 성과를 과장한 후 “트럼프는 모든 것에 대해 옳았다”라고 끝을 맺는다.
70년 우방이면서 대중 패권경쟁의 공동전선을 구축해 온 미국과 유럽은 독선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도를 넘는 일방적인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동맹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유럽은 독자적 활로를 찾기 위해 무역 다변화 기반 구축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 양 측면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EU는 19년 끌어오던 인도와의 자유무역협정(FTA)과 25년 끌어온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의 FTA를 1월에 모두 전격 체결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영국, 캐나다, 핀란드 정상들은 최근 중국을 방문했고 독일도 2월 중에 방중할 예정으로 유럽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와 협력 증진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또 다른 움직임으로 중견국(middle power) 연대론이 1월 초 세계경제포럼에서 제기됐다. 캐나다의 카니 총리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견국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카니 독트린(Carney Doctrine)을 발표했다. 현재는 선언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지만 연대론이 유럽의 독자노선과 인도 등 거대 개도국들의 움직임과 조응하면서 하나의 실체로 수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린란드 사태로 가시화된 ‘트럼프 발’ 유럽의 집단적 활로 모색은 제3의 세력이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할 것이다. 만약 새로운 세력 형성이 성사된다면 세계의 지정학 구도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구도에서 ‘2+1’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3극 체제가 아니라 2+1 체제라고 한 것은 새롭게 부상할 세력의 실체가 어떠한 성격을 띨 것인지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유럽 주도의 세력화 향배에 따라 지정학 구도 재편될 듯
새 집단의 성격별 유형과 특징을 예상해 보면 제1 유형은 집단 내 무역기구를 설치하거나 WTO를 활용하여 무역자유화와 공정무역에 기초한 무역 확대를 촉진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배제함으로써 중립성과 독자성을 확보한다. 제2 유형은 제1 유형과 같으나 집단 내 국가에 대한 트럼프정부의 ‘약탈적’ 관세 부과에 대해 제동 역할을 추가한다. 제3 유형은 제1 유형과 같으나 미국과 중국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 중국의 참여가 예상된다. 제4 유형은 미국과 중국이 대타협을 성사시켜 제3 집단을 무력화하고 G2 시대로 이행한다.
제3 세력이 형성되면 미국과 중국의 전략도 수정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제3 세력 내에서의 군웅할거, 미국과 중국의 줄 세우기 등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도 있다. 올해는 세계 동향을 매의 눈으로 주시해야 한다.